[기자의 눈]김수경/´겨울연가´의 시작과 끝

  • 입력 2002년 3월 14일 18시 37분


모처럼 낭만적이고 순수한 사랑에 빠져들어 브라운관 앞에 모여들었던 시청자들이 ‘역시’하는 실망감과 함께 씁쓸하게 TV 앞을 떠나고 있다.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KBS 2TV ‘겨울연가’ 종반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A(여)와 B(남)는 고교 때 만난 커플. B가 교통사고로 죽자 A는 C와 사귄다. 그런데 10년 뒤 B와 똑같이 생긴 D가 나타난다. B는 죽은 게 아니라 그를 사생아로 낳은 어머니가 최면요법으로 B의 기억을 지운 뒤 새로운 인물 D로 둔갑시킨 것.

이어 D는 또 다른 교통사고의 충격으로 자신이 B라는 기억을 되찾는다. 드라마는 D와 A가 이복남매라고 했다가 다시 B와 C가 이복형제라고 한다. 이때쯤 A와 B(D)의 사랑이 이뤄지는 듯하다가 다시 반전된다. B는 교통사고의 후유증 치료를 위해 기억상실의 위험이 있는 수술 앞에 망설이던 끝에 수술을 받기로 하고 A를 떠나보낸다.

‘겨울연가’의 줄거리를 설명하려면 이처럼 몇 개의 도표가 필요할 정도다.

1월 중순 시작해 19일 끝나는 이 드라마는 많은 뒷얘기를 남겼다. 배용준 최지우 등 주인공의 헤어스타일이 유행했고 촬영지도 젊은이들의 순례코스가 됐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 부적절한 상황설정과 들쭉날쭉한 스토리 전개로 극의 긴장과 완성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교통사고와 기억상실, 최면요법, 기억상실이 뒤따르는 수술 같은 억지 등 혼돈스러운 반전이 이어졌다. 여기에 이복남매 이복형제 등의 상황 설정도 혼란을 더했다. 제작진이 방영 연장을 추진했다가 주연들의 반발과 시청자들의 냉랭한 반응으로 포기하기도 했다.

방영 초기 수십만건의 팬 메일이 왔던 ‘겨울연가’의 게시판에는 이제 “황당무계하다” “그만 좀 하라”는 등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모처럼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로맨틱 드라마가 이런 지경에 이른 채 끝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안타까움이자 손실이다. 드라마나 정치나 박수칠 때 떠나기가 그렇게 어려운 걸까.

김수경기자 문화부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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