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년대 내용만 대강 추린 일본어판 중역본으로 우리 청소년들을 열광시켰던 이 작품들이 원전에 충실한 ‘정전(正典) 번역본’으로 돌아온다. 동서문화사는 70년대 중학생용 5권짜리로 선보였던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강머리 앤’을 완역, 지난달 10권으로 내놓았다. 대산문화재단도 중국고전 ‘서유기’를 번역해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내년에 출간할 예정이다. 뒤마의 ‘몽테 크리스토 백작’은 15일 개봉한 영화 ‘몬테 크리스토(The Count of Monte Cristo)’와 발맞춰 다음주 민음사에서 6권으로 나온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지난날 청소년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던 ‘홈스와 뤼팽의 대결.’ 2월 황금가지에서 출간돼 ‘정전 번역 붐’에 불을 붙인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 전집(전 5권)은 18일 현재 10만질이 판매됐다고 황금가지측은 밝혔다.
19세기말을 풍미한 영국의 ‘홈즈’에 대한 대항마로 탄생한 프랑스의 ‘뤼팽’은 한국에서도 홈즈의 기세에 맞불을 놓고 있다. ‘번역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지경. 출판사 까치가 전 18권의 전집을 내놓는 것을 비롯, 황금가지(20권), 태동출판사(10권), 샘터(22권) 등이 전집을 준비 중이다. 작가 서거 이후 오랜 시기가 지난 작품은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고도 출판할 수 있기 때문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게 된 것.
이런 ‘정전 완역 열풍’에 대해서 출판계는 일단 ‘홈스’ 전집의 성공이 60∼70년대 ‘청소년 소설’에 열광했던 계층의 향수에 불을 붙인 것으로 보고 있다. 옛날 ‘홈스’ 등을 감명깊게 읽은 세대가 당시보다 훨씬 치밀한 텍스트를 접하고 다음 세대에 권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출판사들의 번역 경쟁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
황금가지의 장은수 편집부장은 “‘어린시절 고전’의 완역본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재미있고 검증된 읽을거리에 독자들이 갈증을 느끼고 있는 반면 기존의 한국문학작품 등이 이런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라고 지적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청소년 문학의 경우, 유행 작품이 20∼30년을 주기로 되풀이된다는 설이 있는데 이는 특정 작품군에 익숙한 부모 세대가 어린 시절 받은 감동을 자식에게 대물림하려는 욕구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산문화재단의 곽효환 문화사업팀장은 최근의 ‘정전 완역 붐’에 대해 “번역 인력 풀이 형성되고 출판시장이 고급화되면서, 어린시절 축약본만을 읽고 자란 독자를 향한 고급 마케팅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