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발시대, 최초의 중앙온수난방의 중산층용 아파트 거실에 걸린 그림을 보며 세 딸은 매일 밤늦게 귀가하는 아빠와 자신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림에선 새 다섯 마리 중 한 마리만 피로 때문인지 술 때문인지 퀭한 눈으로 멀찍이 떨어져 매화나무 가지에 앉아 있다. 첫째(36)가 초등학교에 막 입학하고 연년생인 둘째(34) 셋째(33)가 한창 싸울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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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씨는 “그땐 모두들 먹고 살기 힘들었고 미술 같은 데 관심이 없었다”고 말한다. 유럽이다 미국이다 출장도 많았지만 유명박물관의 계단을 오르내릴 시간은 없었다. 그러나 양씨는 달랐다.
“세계적인 박물관을 찾을 기회는 없었지만 아이들의 손을 잡고 서울에서 열리는 유명 전시회는 꼭 보러 갔어요. 제가 대학 때 피아노를 전공했기에 아이들을 음악회에도 데려가고 싶었지만 어리다고 못들어가게 하잖아요.”
그 다음해인가 30만원을 주고 산 그림이 서양화가 주민숙의 미인도. 정초 두어달은 홈웨어 살 돈도 아낄 겸 혼수로 해 온 한복을 입었던 양씨는 한복차림의 단아한 여인상을 현관앞에 걸어 놓으면 손님을 맞아들이는 분위기를 줄 것 같았다. 30만원이 작은 돈이 아니었지만 집안을 치장하는 대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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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몇 년치 생활비를 아껴 그림을 사모으곤 했다. 맘에 드는 이대원의 작품은 너무 비싸 포기했고 한 외국작가의 작품은 엽서를 사서 표구해 걸어뒀다. 주택가 사이 너른 길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을 보며 “선선한 새벽공기가 느껴지지 않으세요”라고 묻는 양씨의 모습이 미인도의 여인 같다. 외손자 목욕시키면서 한복은 벗어버렸다지만.
18년 전 압구정동 68평 아파트로 이사오면서 양씨는 조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집이 넓어 보인 것은 아니지만 황씨는 바깥일 때문에, 아이들은 자기들 일로 너무 바빴다. 서양화전에 갔다가 ‘목욕하고 나와 쉬는 것 같은’ 고정수의 작품이 너무나 편해보여 화랑 측에 팔라고 졸랐다. 250만원인가, 400만원인가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보증서도 받지 않았다. 조각은 그림보다 비싸 남편에게 학생들 습작이라며 산 조각이 5점이나 된다. 미술품은 벗이 돼 줬고 소장품의 작가에 관심을 갖다보니 새 사람을 사귀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술품은 장식품이 아니라 실용품이라는 것이 양씨의 지론. 일생을 같이 하면서 위안도 주고 활력도 된다. ‘만지지 말라’고 당부하는 다른 컬렉터와 달리 양씨는 조각을 쓰다듬어 보라고 권한다. 이창림 심인자 김경옥의 조각 사이에 서툴게 그려 붙여놓은 햄토리 그림에서 외할머니의 너그러움이 엿보인다. 미술을 배우고 싶지만 이웃에 사는 외손자들 치다꺼리에 백화점과 화랑의 미술강좌 전단만 쌓아놓고 있다.
“그림을 그린다면 내 안에서 피어오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양씨의 말에 어느 주부가 쓴 ‘나도 타오르고 싶다’(한길아트)란 미술책이 떠올랐다. 올 12월 환갑이라는 양씨에게 ‘피어오른다’는 것은 뭘까? 꽃 안개 구름 향기 아지랑이 행복…?
4년 전 부사장직을 끝으로 동양화학에서 은퇴하고 희경건설 감사로 있는 황씨는 미술품에 대해 “뭐 좋죠”라고만 말하다 양씨가 “부부는 닮는다는데 우린 아닌 것 같다”고 하자 한마디 한다. “실은 할 일 없는 친구들과 하도 심심해서 어제 롯데월드화랑에 다녀왔어.”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