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장인정신]여성국극 맥잇는 ´남장 여배우´이등우씨

  • 입력 2002년 3월 20일 14시 06분


'춘향전'의 이도령으로 분장하고 있는 국극여배우 이등우씨
'춘향전'의 이도령으로 분장하고 있는
국극여배우 이등우씨
여성국극은 대중예술업계에서 ´사양(斜陽) 장르´에 속한다. 해방 전후부터 1960년대까지 전국을 누비며 서민들의 애환을 달랬지만 이제는 영화 뮤지컬 등에 밀려 잊혀지고 있는 것.

이등우씨(李登祐·본명 이옥천·국극 보존회 회장)는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여성국극의 맥을 잇는 독보적인 ´남장 여배우´다. 그가 없으면 여성 국극은 ´앙꼬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

남자를 그럴듯하게 연기할 여배우가 없어요. 혹독한 연습을 필요로하는 남성 연기를 배우려는 후배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죠. 여자끼리 연기하는 국극에서 남장 여인의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어서 아직도 제가 남성 연기를 도맡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 약수동 부근의 ´옥당 국악실´에서 만난 이씨는 여느 중년의 여인처럼 곱상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다만 짧은 머리와 와이셔츠 차림에 걸걸한 목소리에서 남성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씨는 ˝관객이 남자를 연기하는 여자를 진짜 남자 로 착각하게 만드는 게 국극의 매력˝이라며 ˝여자끼리 연기하니까 섬세하고 부드러운 장점도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국극 때문에 울고 웃은 기억을 갖고 있다. 어린시절 유랑극단의 국극 공연에 매료된 그는 서라벌 예대(현 서울예전) 졸업후 1969년 국극단 ´이귀랑과 그 일행´을 조직했다. 2년간 극단을 이끌며 공연은 연일 성황을 이뤘지만 고향(경북 경주)의 집과 전답을 날렸다. 기획사에서 돈을 빼돌리면서 빚잔치를 한 것. 그로 인해 국극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였다.

그러나 이씨에게 국극은 운명이었을까. 중앙대 국악예고 등에서 국악 강사로 활동하던 93년 우연히 ´춘향전´에 방자로 출연한 것을 계기로 다시 ´남장 배우의 길´을 걷게된다. ˝이도령보다 방자가 더 멋있다˝는 평가와 부산 공연 직후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청소년들로부터 ˝아저씨 멋있다˝는 말을 듣고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 이후 안평대군 윤동주 일대기 황진이 등의 주인공을 맡으며 사라져가는 국극의 맥을 잇고 있다.

˝예전에는 아줌마 팬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은 청소년 등 젊은이들이 공연을 많이 찾아줘요. 시들어가는 국극에 단비 같은 존재입니다.˝

그는 여성 국극 배우이면서 ´소리꾼´이다. 아홉 살때부터 판소리를 배우며 중요무형문화재 5호였던 박녹주 선생(79년 작고)으로부터 12년간 춘향가 흥보가 등을 사사했고 72년 중요무형문화재 경연대회에서 판소리 부문 2등, 2000년 장흥 전통가무악제전 종합대상 대통령상 수상 등 동편제 명창 으로 인정 받았다.

˝국극 때문에 박녹주 선생의 대를 잇지 못한 것이 항상 짐이 됩니다. 언젠가는 판소리로 돌아가야겠지만 지금 당장은 국극의 부흥이 우선이지요.˝

그가 30년째 ´옥당 국악실´을 운영하며 판소리 민요 가야금 산조 등을 가르치는 것도 국악에 대한 남다른 애정 때문이다. 또 남은진 이계순 등 7∼8명의 제자를 가르치며 국극 배우에게 필수 요건인 국악을 전수하고 있다.

´여성국극 자유부인´을 준비중인 이씨는 ˝개인적으로 수입이 없는 후배 제자들을 키우는 작업은 어려움이 많다˝며 ˝정부와 대기업 등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우리 국극을 다시 세울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분장을 마치고 갓을 쓴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이도령이다. 사진촬영이 진행되자 ˝총각으로 나와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우스갯소리를 던진다. 한사코 나이를 밝히기를 사양하는 그는 아직 미혼. 결혼 생각은 없는지 슬쩍 물었다.

˝가끔 힘들 때 남자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지요. 저를 좋아하는 남자도 많고요. 하지만 이미 두 번이나 결혼을 해버린걸요. 국악 그리고 국극과.˝

<황태훈기자>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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