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씁쓸한 일은 윤이상의 한국인 제자들의 작품을 접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윤이상은 많은 제자들을 길렀고 그 중에는 한국인 제자들도 여러 명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제자들의 작품은 공연되었으나 한국인 제자들의 작품은 빠져 있었다. 여기서도 민족분단의 비극적 상황에서 비롯된 사상적 갈등이 상존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음악으로 우리 곁에 돌아와▼
이번 음악제의 주제는 윤이상의 작품에서 이름을 딴 ‘서구와 추상’이었다. 이 주제를 바탕으로 많은 윤이상 음악의 전문가들이 집결해 윤이상 음악의 해석에 대한 견해를 나눔으로써 통영국제음악제는 그 영향력 확산의 중요한 진원지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여기에다 윤이상 음악들을 낳게 한 요소들을 추적해 통영 오광대와 승전무 등 전승된 예술적 자원들을 다시 캐내는 기회가 제공된다면, 이 음악제의 영역의 확대가 이루어지고 나아가 새로운 음악제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통영 시민들의 관점에서 볼 때 음악제가 그들의 일상적인 삶과 지역 발전의 원동력으로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하는 점도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물론 통영 시민의 대부분은 이번 축제가 곧바로 관광자원으로, 혹은 시민의 물질적 풍요를 가져올 문화산업의 하나로 발전되기를 희망하고 있을 것이다. 또 음악제가 성공하면 산업적 측면에서 큰 영향을 미칠 것도 확실하다. 그러나 이런 음악제는 그런 산업적인 측면보다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시민의 삶을 자극해 한국 사람다운 삶의 모습을 다시 찾아가는 계기가 되는 게 더 바람직하다.
통영은 아름다운 곳이다. 윤이상의 음악이 세계적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젊었을 때 호흡했던 통영의 맑은 공기, 주변의 바다와 산, 그리고 아름답고 음악적이며 인정미 넘치는 통영의 말씨 등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통영의 모든 건물들은 하얀색 벽, 오렌지빛 지붕으로 바다의 푸른 빛깔과 어울리게 칠해졌다. 역사깊은 이 고장의 많은 옛것들이 아직 남아있다.
그러나 그것들의 붕괴는 시간문제다. 지금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살기에 편한 고장이 될지는 모르지만 점점 심해지면 매연으로 가득 찬 인심사나운 삭막한 항구도시로 변할 지도 모른다. 축제기간 거리에 나부낀 음악제의 깃발, 현수막, 음악제 프로그램의 문장 속에서는 통영의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간판들은 다른 도시에 비해서는 작고 예쁘지만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재벌들의 영토 확장의 위세를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영어로 TIMF(통영국제음악제)라고만 큼직하게 쓴 서구식 운동복을 입은 안내요원들의 모습에서 무엇을 느낄 것인가. 극장의 개막을 알리는 에밀레 종소리는 서울의 국립극장과 무엇이 다른가. 국제화시대라고 하는데 왜 한글과 영어로만 표시하는가.
▼통영음악제를 세계적 축제로▼
음악제를 개최하는 큰 목적의 하나는 이러한 주변의 환경들을 하나하나 바로 잡아가는데 자극을 주는 일이다. 통영에 와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워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고장의 관광자원이 된다. 한국식 기와지붕을 덮어놓은 배를 타보고, 가마 모양의 시내버스에 몸을 실어 보고, 초가집 여관방에서 잠을 자보고, 할매김밥으로 요기하고, 통영갓을 쓴 한국 양반이 되어 보고, 통영 광대의 신나고 아름다운 체험을 해보는 것이 이국에서의 값진 문화체험이 되는 것이다.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독일 도나우에싱겐에서 듣는 윤이상의 음악과 통영에서 듣는 윤이상의 음악은 달라야 한다. 이제는 서양의 아류나 서양 모방에서 탈피해 우리의 참모습을 찾을 때가 오지 않았는가. 통영국제음악제는 그러한 새로운 역할을 능히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상만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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