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호적상 이름 외에 ID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내 ID는 artbis다. 어릴 적 꿈이 화가였던 것을 아는 지인들은 미술(art)과 관련한 ID가 아니냐고 묻지만 사실, 이 ID는 책의 한 구절에서 따 온 것이다. artbis는 ‘Always Ready To Break Into a Smile’의 약자다. 번역하면 ‘언제나 웃을 준비가 되어 있는 얼굴’ 정도될까.
이 문장은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 소갈 린포체가 지은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티베트의 지혜’(1999·민음사·오진탁 옮김·원제 The Tibetan Book of Living and Dying)에 나온다. 저자가 어릴 때 죽음을 처음 목격하게 되는 스님 한분의 평상시 얼굴 모습을 설명한 대목이다.
막 웃음을 터뜨리기 전의 얼굴…. 이런 얼굴을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날 때 거울을 보며 이 문장을 떠올리면 기분이 밝아지는 경험을 하곤 한다. 책 내용 전체가 감동적인 문구들로 가득하지만, 내게는 이 문장이 제일 잊혀지지 않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ID로 쓴 것이다.
나는 이 책을 6년 전, 원서로 먼저 접했다. 미국 출장 갔다 온 친구가 당시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책이라며 소개를 했다. 몇 년 뒤 번역 책이 나와 반가웠다.
책에서 ID를 따올 때는 웃음에 관한 것이었지만 이 책의 주 내용은 티베트 불교를 바탕으로 티베트인들이 오랜 세월 온축(蘊蓄)해 온 죽음에 관한 통찰이다. 불교가 성한 여러 나라 중에서도 티베트 불교는 죽음에 대해 가장 깊이 사색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 책은 티베트 불교 가르침의 정수인 티베트인의 생사관을 담은 책이다. ‘바로 지금의 삶’조차도 억겁의 윤회라는 거대한 수레바퀴를 두고 보면 잠시 머물다 갈 뿐 이라는 티베트인들의 죽음에 대한 사유는 거꾸로 삶의 참된 의미를 들려준다.
죽음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도착지이면서 새로운 출발점이라는 저자의 말은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죽음을 다룬 책이면서도 억지스럽지 않게 단순함 부드러움 다정다감함을 느낄 수 있게 한 이 책은 가끔 삶에 지친 나에게 진언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일상에 바쁜 현대인들에게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쩌면 삶에 대한 허무나 존재의 유한성에 대한 비탄을 의미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통해 죽음은 무섭거나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 아침에 일어나 옷을 갈아 입듯 살고 죽는게 그런 것, 죽음은 또 다른 삶이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갖게 됐다. 그리하여 삶에 대한 여유와 관조를 배웠다.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원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변양균(기획예산처 기획관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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