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파리엔 책의 향기가…27개국 참가 국제도서전 한창

  • 입력 2002년 3월 25일 18시 18분


파리 국제 도서전 전시장 3층에서 바라본 전경
파리 국제 도서전 전시장 3층에서 바라본 전경
‘책과 축제’

제 22회 파리 국제 도서전에서는 전혀 어울릴 것같지 않은 이 두 개의 단어가 하나로 어우러졌다. 도서전 개막일인 22일 프랑스 파리 엑스포 전시장. 27개국 1450여 출판사가 쏟아 놓은 엄청난 책더미 속에서 독자들은 책의 향기에 흠뻑 취하고 있었다.

27일까지 열리는 이 도서전에서 일반 독자와 관람객은 300여회의 ‘작가와의 대화’와 토론회, 시 낭송회 및 각종 공연 등을 통해 책에 한발 더 다가선다. 모두 1800명의 작가가 초청됐으며 6일 동안 24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갈 것이란 게 주최측의 추산.

갈리마르 플라마리옹 등 프랑스 대형 출판사는 전시장 한 가운데 커다란 부스를 열었다. 프랑스 최고의 출판사로 꼽히는 갈리마르측은 부스 앞에 작가석을 만들어 즉석 사인회도 열고 있다.

프랑스 군소 출판사는 지역별로, 외국 출판사는 나라별로 부스를 열었다. 르몽드 르피가로 등 각종 신문과 방송, 유럽의회같은 공공기관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프랑스인의 사랑을 받는 만화 ‘아스테릭스’를 출판하는 아쉐트 출판사는 부스를 아스테릭스가 살던 고대 갈리아의 마을처럼 꾸며 놓고 어린이들을 맞았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소풍나온 아이들, 학교에서 단체로 견학온 어린이들도 눈에 띈다.

올해도 대략 2만5000명의 어린이가 도서전을 찾을 것이라고 한다. 영상매체와 인터넷 발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호황을 누리는 프랑스의 출판산업의 저력이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 있었다.

판권과 번역권 시장으로 세계 1위인 프랑크푸르트 북페어나 최근 열린 런던 북페어가 비즈니스 중심이라면 파리 북페어는 책 소개와 독자 중심이다. 출판 비즈니스는 25일 하루에 집중시켜 놓고 나머지 날짜를 모두 일반인에게 개방한 것도 이런 취지다.

17일 열린 런던 북페어를 들렀다가 22일 파리 도서전을 찾은 임희근 김영사 해외기획실장은 “파리 도서전의 첫 인상은 런던과 달리 비즈니스 중심이 아니라 국민적 축제같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화로 돈을 만드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나라가 프랑스다. 내부적으로는 도서전의 초점이 아시아 시장에 맞춰져 있다는 게 도서전을 찾은 한국측 전문가들의 얘기.

주최측은 ‘파리의 아시아’라는 별도의 기획을 마련, 아시아 각국 출판사 대표 등을 초청했다. 항공료와 숙박비 등도 전액 부담했다. 한국에서는 민음사 김영사 문학동네 동문선 등 4개 출판사 대표가 초청됐다. 프랑스 출판업계가 아시아 시장을 새로운 타깃으로 노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도서전에서 만난 일본인 번역가 나오 사와다 시라유리 대학 교수는 “프랑스인의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프랑스 출판계도 아시아를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측은 한국 일본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 10개국을 위해 전시장내에 별도 공간도 제공했다.

프랑스 악트 쉬드 출판사 부스에 전시된 이문열의 '시인'(왼쪽)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불역본. 악트 쉬드 출판사는 29권의 한국 작품을 번역 출판했다.

한국이 따로 부스를 열지 않아 한국 작품이 별로 눈에 띄지 않은 것은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프랑스 ‘악트 쉬드(ACTE SUD)’ 출판사 부스를 찾으니 불어로 번역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시인’ ‘새하곡’, 이청준의 ‘조율사’, 김승옥의 ‘다산성’ ‘60년대식’, 최윤의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등 한국작품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직원에게 “한국작가 책이 잘나가느냐”고 묻자 “아시아 작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 문학에 대한 호기심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가 황순원과 이승우 작품 등을 불역 출판한 쥘마(ZULMA) 출판사 기획 책임자 로르 르로이씨의 얘기는 달랐다. “서점의 동양 코너에서도 중국과 일본 작품에 밀려 한국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 한국문학의 세계화까지는 아직도 멀고 험한 길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책은 지식의 전달 수단이자 다른 문화로 들어가는 문이다. 하지만 책이라는 문을 통해 외국 독자를 우리 문화로 들어오게 하려면 작가와 번역가는 물론 정부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도서전을 찾은 한국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이번 도서전의 ‘옥의 티’라면 ‘명예 초청국’인 이탈리아 대표단이 철수한 것. 파리 도서전은 매년 ‘명예 초청국’으로 한 나라를 선정, 국가원수를 초청하는 등 대대적인 행사를 벌여왔다. 그러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의 언론통제 등에 항의, 카트린 타스카 프랑스 문화장관이 베를루스코니 총리 초청을 거부한데 이어 전시장 주변에서 베를루스코니 총리 규탄 시위까지 일어나자 이탈리아 대표단은 짐을 싸버렸다. 하지만 움베르토 에코 등 이탈리아 초청 작가들은 예정대로 도서전에 참가, 자국 총리에 불만을 표시했다.

르몽드 등 프랑스 언론들은 “순수 문화행사인 도서전이 정치바람을 타는 것이 안타깝다”고 보도했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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