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사 처형시간 맞춰 명동성당서 추모미사 열려"

  • 입력 2002년 3월 25일 18시 19분


26일은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암살한 안중근(安重根) 의사가 뤼순(旅順)감옥에서 순국한 지 92주년이 되는 날이다.

1910년 3월26일 순국 당일 명동성당에서는 안 의사를 기리는 미사가 열렸으며 안 의사가 처형된 뒤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안 의사를 추모하는 그림엽서가 큰 인기를 끌었던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안 의사 연구가인 최서면(崔書勉) 국제한국연구원장은 당시 서울에서 발행된 일본어 일간신문 ‘조선신문’에서 이 같은 사실을 찾아내 24일 도쿄(東京)에서 열린 안중근연구회 정기모임에서 발표했다.

이 신문 1910년 3월27일자는 “흉한(兇漢) 안중근은 26일 뤼순감옥에서 처형됐을 터인데 경성(京城) 불국교회당(佛國敎會堂·당시 명동성당의 이름)에서는 안의 처형시간에 맞춰 안을 위한 미사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또 안 의사가 순국한 지 닷새 지난 3월31일자 신문에는 “‘충신 안중근’이라는 제목의 그림엽서를 파는 한인이 있고 이를 앞다퉈 사려는 사이비 애국자들이 엄청 많은데 이는 위험한 사상을 고취해 치안을 방해하므로 경시청은 발매를 금지하고 발견하는 대로 압수하기로 했다고 한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이로부터 엿새후인 4월6일자에는 “지난번 발매를 금지한 흉한 안중근의 그림엽서는 평양지방에서 압수된 것만도 이미 300여장이 넘으며 이 지역 학생 등은 이 엽서를 구하려고 가게로 가는 자가 많고 이미 구한 자 중에는 보존을 위해 액자를 사려고 하는 자도 많다고 한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안 의사가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을 때인 1909년 11월11일자는 수사를 위해 통감부가 입수한 안 의사의 사진 속 모습에 대해 “눈썹이 굵고, 두 눈은 쏘는 듯이 광채를 띠고 있으며… 총체적으로 매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데 입술을 굳게 물고…”라는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최 원장은 “조선신문은 당시 서울에서 일본인을 위해 발행하던 신문이어서 도쿄 등에 본사를 두고 전문(電文)을 이용해 기사를 쓰던 다른 일본 신문들에 비해 기사 내용이 더 정확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안 의사에 대한 기록은 아직도 찾아내야 할 것이 많다”며 “안 의사를 기리는 행사도 중요하지만 연구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심규선특파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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