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도 예외는 아니다. 경내에 당우가 그리 많아도 엉덩이 붙이고 잠시 쉴 곳은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일까. 주지 지우스님은 절 담장 아래에 자그만 찻집 선각당(先覺堂)을 두었다. 숲그늘진 연못가에 그림처럼 들어선 아담한 나무 기와집이다.
선각은 왕이 도선국사에게 하사한 호(號)라고 했다. 그 호을 찻집의 옥호로 삼은데는 이유가 있다. 이 자리가 도선국사가 수행하던 터이기 때문이다. 찻집 앞 연못 삼인당은 또 국사의 작품이다. 절 주변의 수백년생 차나무 역시 국사의 수행길에 동반했을 그 차잎의 주인일터. 그러니 예서 차 한 잔은 국사에 대한 인사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장지문을 열고 들어선 실내. 은은한 나무향은 어둑한 실내를 채운 조용한 명상음악과 썩 잘 어울렸다. 벽사방의 유리창으로는 신록 물오르는 초목이 비쳤다. 그루터기 잘라 만든 차탁의 유리판 아래에는 대잎에 쓴 쪽지편지가 깔려 있었다. ‘눈물이 나면 선암사에 가라는 시인의 말을 알 것 같습니다.’ 이렇듯 감상에 젖고도 남을 만한 곳이다.
찻집 운영을 맡은 이는 장미향씨(선각차 대표). “비료 농약 닿지 않은 사찰 주변 산의야생 차나무의 잎을 따서 구증구포(九蒸九포·찌고 말리기를 아홉 번 함)의 전통제다법에 따라 만든 수제차(手制茶)차만 냅니다.” 햅차나올 즈음이니 차 맛은 이미 품평의 대상에 오를 수 없을 터. 그러나 절풍경에 취한 탓일까, 그 향 맛 색이 햅차 못지 않게 좋았으니…. 차 한잔 4000원. 연중무휴(오전 8시반∼오후 6시반). 061-754-6323
승주〓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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