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다면평가, 장점 많지만 '함정'도…개인감정 개입차단이 숙제

  • 입력 2002년 3월 28일 15시 10분


최근 각 기업이 인사관리의 신 기법으로 도입하고 있는 다면평가제도가 기업 내 인간관계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다면평가란 흔히 ‘360도 평가’로 불린다. 상사의 평가만으로는 조직원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보고 △부하 직원의 상향평가 △동료의 평가 △고객의 평가를 더한 것. 고객 평가는 외부 고객과 조직 내 업무 관련이 있는 부서에서 평가하는 내부 고객의 평가가 있다. 통상 평가항목은 5∼10개로 특정인의 리더십, 직무태도, 능력, 실적 등에 관해 점수를 매긴다.

미국에서 시작된 인사제도로 국내에는 90년대 초 소개됐지만 실제 도입은 97년부터 서서히 이뤄졌다. 포철 한전 삼성SDI LG전자 등 기업체와 교육인적자원부 등 일부 정부 부처가 도입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상향평가에 초점을 맞춰 다면평가제를 도입하고 있다.

‘평가에 지나치게 관대한 한국인의 특성’은 다면평가를 도입하는 기업들의 공통된 고민거리다. 포철 인력개발파트의 이성 과장은 “부하직원들은 사석에서는 5점 만점에 2점 밖에 안 줄 것처럼 얘기하다가도 실제 평가에서는 평균 4점을 주더라”고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산하 노동연구원 양병무 부원장은 부하직원들이 상사를 평가할 때 흔히 빠지기 쉬운 오류로 ‘현혹효과’와 ‘대비효과’를 꼽았다. 상사의 행동 중 한 가지가 마음에 들면 다른 능력이나 리더십 요소 등은 보지도 않고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이 ‘현혹효과’다. ‘대비효과’는 자신의 스타일과 대비해 비슷하면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이다. 양 부원장은 “술을 좋아하는 부하직원들이 술 잘하는 상사를 높이 평가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이것이 바로 대비효과”라며 “다면평가는 반드시 도입될 필요가 있지만 시행과정에서 이 같은 오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면평가를 도입하려면 조직 내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먼저 기업문화와 조직원 간의 신뢰가 중요하다. 구성원들 사이에 ‘인사고과가 너무 불평등하다’ ‘회사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식의 불신감이 팽배해 있거나 서로 고객이 돼서 평가할 수 있는 각 부서간 갈등이 심한 기업은 다면평가를 시도하기 어렵다. 개인 감정이나 부서 이기주의가 평가에 스며들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좋거나 나쁜 평가를 평가결과에서 제외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또 팀원이 3∼4명밖에 되지 않는 부서의 경우 상사가 평가 결과를 보면 어떤 부하 직원이 어떤 평가를 내렸는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에 상향 평가의 기본 원칙인 ‘비밀’이 보장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면평가제의 효과를 둘러싼 논란은 기원지인 미국에서도 이미 시작됐다.

2000년 12월초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지는 뉴욕의 한 마케팅회사 수석부사장의 경험을 소개하면서 다면평가제가 ‘인기대회’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WSJ에 따르면 이 수석 부사장은 직원들로부터 ‘독선적’이라는 상향 평가결과를 통보받은 뒤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느라 중대한 의사결정을 지연시키는 부작용을 빚었다. “누군지 모를 일부 직원의 지적 때문에 오히려 비효율적인 방향으로 퇴보경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고 WSJ는 부사장의 고충을 전했다.

이 같은 다면평가제 효과에 대한 논란 때문에 다면평가 결과를 인사고과에 직접 반영하는 국내 기업은 아직 많지 않다. 대부분 상사의 리더십 교육에 참고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다면평가는 ‘시험을 본다’는 개념이 아니다. 부하직원들이 평가부문별로 상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측정, 그 결과를 통보해 주고 이를 통해 상사의 리더십을 육성 개발하며 부족한 부분을 개선해 나가는 ‘교육적인 측면’이 강조되어야 한다.”(삼성경제연구소 유지성 수석연구원)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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