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국민대 리더십학회 '엄마의 리더십' 토론 현장

  • 입력 2002년 3월 28일 15시 24분


국민대 이슈리더십 연구학회 'KIF' 회원들이 '어머니의 리더십'에 대해 토의하고 있다
국민대 이슈리더십 연구학회 'KIF' 회원들이
'어머니의 리더십'에 대해 토의하고 있다
“각자의 아버지, 어머니를 대상으로 가족이 체감하는 리더십 점수를 따로따로 매겨보는 게 어때요.”

누군가가 제안하자 모두 좋다고 머리를 끄덕였다. 18일 오후, 국민대 학부생들로 구성된 이슈리더십 연구학회 ‘KIF(Kookmin Issueleadership Frontiers)’의 월요 정기세미나 현장. 박진수씨(23·경영3) 등 여학생 5명, 남학생 3명의 참가자가 즉석채점한 결과를 모으니 어머니는 평균 A-, 아버지는 B+였다.

“역시 어머니가 실세(實勢)야.”

한 가정의 실세로 인정되면서도 리더십을 가진 리더로 적극적인 의미는 부여되지 않는 어머니. 그러나 리더십을 연구해 온 KIF 회원들의 토론 과정에서 한국의 어머니들은 현대 리더십 이론들의 적극적인 실현자라는 것이 이내 드러났다.

“우리나라 가정의 실제적인 ‘이슈 메이커’는 어머니인 것이 확실해요. 육아 교육 재테크 등 중대사는 다 어머니가 결정하잖아요.”

“이 학원이 대학을 잘 보낸다더라, 이 아파트가 ‘뜬다’더라 하는 실제적이고 돈 되는 정보에 가장 민감하고 신속하니까요. 뉴스는 아빠가 더 오래, 많이 보는데도 엄마의 ‘입소문 정보력’은 정말 무서울 정도예요.”

“어머니가 이슈 메이커라는 표현이 아주 적절한 것 같습니다. 이상과 도전할 거리를 제시한 뒤 조직의 구성원들과 함께 목표를 이뤄가는 것이 이슈 리더의 기능이라고 배웠잖아요.”

이슈리더십이란 국민대 백기복 교수(경영학부)가 만들어낸 최신 리더십 이론. 조직에서 직급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보다 창의적이고 핵심적인 이슈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리더가 된다는 뜻이다. 이슈 리더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1990년대 초 전 세계적인 대인지뢰 설치반대운동을 최초로 이끌어낸 베트남전 상이용사 로버트 뮬러나 소떼를 몰고 삼팔선을 넘은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등이 꼽힌다.

그러나 어머니가 만들어내는 가족내의 이슈가 늘 창의적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가족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대목에서 학생들은 어머니의 리더십이 카리스마형이 아닌가로 논의를 확장했다.

“아직 가부장적인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역할을 하기도 하죠. 그런 집에서도 어머니가 실세예요. 어머니의 리더십은 비전 제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행동이 따르는 실천적 리더십이니까요.”

“어머니의 카리스마는 신체적 매력이 아니라 가족의 절대 신뢰를 근거로 한다는 점에서 남성의 카리스마적 리더십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2차대전 후 맥아더 등 전쟁 지휘관들의 리더십을 분석하는 가운데 주류로 떠오른 이론. 추종자로 하여금 불가항력적으로 따르게 하는 천부적인 리더십 능력을 뜻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특징이고, 추종자들에게는 늘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어머니의 카리스마는 장군들처럼 ‘호언장담’이나 외면적 ‘박력’에 근거를 두지 않는다. 토론자들은 “어머니의 경우 가족을 위해 어떤 상황에서든 모든 희생을 감수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함으로써 추종자들(가족)의 신뢰를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 가족 내 이슈도 주도적으로 만들어내고 카리스마도 가진 한국의 어머니들은 리더로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식당에서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들 하나 따끔히 야단치지 못하는 어머니들 많이 보죠. 자식에 대한 과보호는 가정교육으로도 문제지만 한 가족의 리더로서도 결격사유라고 생각해요. 추종자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지 못하는 것을 진정한 카리스마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우리 집에서는 중요한 일을 엄마가 다 결정하고 통보하는 경우가 많아요. 대부분 엄마의 판단이 옳기 때문에 99% 쯤은 신뢰하죠. 하지만 대학생이 됐는데도 간섭하시는 건 참 싫더라고요.”

“조직에서 어떤 일을 부하직원에게 맡기면서 책임지고 자율성을 발휘할 여지를 주지 않거나 동기부여, 즉 ‘임파워먼트(empowerment)’를 하지 않으면 불만이 높아지는 것처럼 말이죠.”

학생들의 토론은 이내 “우리는 어머니나 아버지로서 어떤 리더십을 가져야 할 것인가”로 이어졌다.

“중학교 때 서태지를 무지 좋아했어요. 서태지가 나오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보려고 며칠을 기다렸는데 엄마가 다짜고짜 전원을 뽑아버리는 거예요. 대안이나 협상안을 내놓지 않고 막무가내로 대하는 리더십은 밑의 사람들로부터 도전 받기 쉽죠. 저는 아이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함께 해결책을 찾는 ‘배려 주도형’의 리더십을 발휘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이론만큼 쉬운 것은 아닐 텐데….”

“부모도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쳐주는 기관이 없으니…. 사실 ‘가족’이라는 조직의 리더로는 자격이 없는 부모도 많지 않나요.”

“맞아요, 사회에서 어머니 리더십 교육 또는 아버지 리더십 교육을 공익적 차원에서 전개했으면 좋겠어요.”

하나의 조직을 다중의 리더가 끌고가기는 어렵다. 그러나 가족의 경우 아버지와 어머니의 리더십 배분이 적절히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점에서 다른 어떤 조직보다도 리더십 발휘에 ‘ 예술에 가까운 균형감각’이 요구된다.

“아버지 역할은 엄연히 있죠. 이사, 아이들의 전학 등 큰 결정이 필요할 때는 대범하게 결단을 내리는 역할을 아버지가 해야 할 경우가 많으니까….”

“같은 여자면서도 엄마가 너무 드세거나 고집을 부려서 아빠가 위축되면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림자 같은 ‘섀도 리더십’을 발휘하는 어머니가 가장 지혜로운게 아닐까요. 실세이되, 지나치게 나서거나 남편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리더십….”

“참, 우리 가운데서 결혼하면 ‘실세가 되겠다’고 주장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한데요.”

“아내가 잘 알아서 가족을 이끌어 주었으면 좋겠다” “결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한 두 남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의 손이 주저없이 위로 올라갔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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