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변호사의 다면평가 체험 "집나간 리더십을 찾습니다"

  • 입력 2002년 3월 28일 15시 24분



현대적 매니지먼트의 요체로 꼽히는 리더십.

비전 제시와 혁신, 이슈 메이킹, 위기관리 능력이 리더의 핵심역량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대기업에서 가족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조직은 리더십 부족에 신음하고 있다. 요즘에는 리더십을 상사와 부하, 고객 등 전방위로 측정하는 '다면평가'가 일반적 추세다.

한 변호사의 다면평가 체험을 따라가 보았다.

윤성철 변호사(34)는 최근 자신의 리더십을 가늠하는 ‘다면평가’ 결과를 통보받고 많이 생각했다. 100점 만점에 윤 변호사가 스스로를 평가한 리더십 점수는 74점. 부하 5명이 평가한 그의 리더십은 평균 70점. 아내가 ‘상사’ 자격으로 평가한 점수는 84점. 다면평가란 기업들이 최고경영자(CEO) 이하 각 부문 관리자들의 리더십을 향상시키기 위해 앞다퉈 시행하고 있는 제도로 결과를 놓고 요즘 곳곳에서 ‘리더’들의 희비가 교차하는 제도다.

윤 변호사는 두달 전부터 사법연수원 동기와 함께 서울 서초동에 성심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4년간 있었던 전 직장(로펌)에서 그는 월급받는 ‘주니어 변호사들 중 하나’였다. 개업 이후 순식간에 ‘피고용인(employee)’에서 ‘고용자(employer)’가 되자 의욕이 넘치고 주인의식이 강해졌다. 그러나 의욕이 커질수록 직원들의 태도가 수동적으로만 느껴졌다. ‘왜 나만큼 절박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지 않을까?’ ‘왜 내 말대로 해 주지 않는 걸까.’

그는 비로소 리더십의 문제를 떠올렸다. 본질적으로 크든 작든 경영조직의 리더가 겪는 상황을 몰랐다. ‘리더십 치료’를 받기로 했다. 그는 경기 용인시에 있는 한 기업 연수원에서 14일 오전 열린 한국리더십센터(www.eklc.co.kr) 주최 CEO과정 집중 워크숍에 참가했다. 취재목적으로 참가한 기자와 리더십 워크숍 ‘동기생’이 된 것이다.

●내가 보는 나, 상사와 부하가 보는 나

리더십 워크숍의 3일간 교육비는 약 200여만원. 윤 변호사는 돈만 낸다고 교육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워크숍 시작 3주 전 78문항으로 구성된 ‘다면평가 프로파일’을 보내왔다. 인적 자원 관리 전문가인 스티븐 코비 박사(‘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의 방법에 기초한 질문이었다. 윤 변호사 자신, 상사와 부하직원들이 동일한 질문에 대해 각각 윤 변호사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점수를 매기는 내용이었다.

직장 상사가 없으므로 상사 몫의 질문지는 판사로 근무하는 아내 원정숙씨(29·대구지방법원)가 맡았다. 변호사들을 제외한 10여명의 사무실 직원 중 여섯명이 ‘부하’로서 그를 평가했다. 응답자는 비서가 선택했기 때문에 윤 변호사는 누가 평가자로 나섰는지를 지금도 모른다.

다면평가 프로파일의 ‘성적표’는 워크숍 둘쨋날 밤 배포됐다. 행사 진행자는 “충격 받는 사람들이 많아 낮에 주면 하루 일과를 망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워크숍 기수마다 설문 결과를 받아들고는 얼굴이 벌게지거나 “기계가 고장나서 측정이 잘못된 것 아니냐”고 항변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열어본 윤 변호사 성적표의 ‘평균’은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 ‘타인평균’이 73점이었는데 부하들이 준 평균 점수는 70점이었지만 ‘상사’인 아내가 후하게 준 덕분이었다. 주말부부라 여전히 신혼 같은 금실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어쨌든 기분좋은 일이었다.

문제는 부하들의 평가였다. 부하 직원들은 ‘이 사람이 개선해야 할 세 가지를 열거하라’는 주관식 질문에 ‘남의 말을 경청했으면 한다’ ‘남의 업무에 대한 간섭도 때를 구분했으면 좋겠다’는 등 쓴 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뼈아픈 조언을 많이 남긴 한 직원은 누구인지 금세 짐작할 만했다. 똑똑하고 일도 열심히 하는 사람인데 어쩐 일인지 윤 변호사가 원하는 방향으로는 일을 추진하지 않았다. 어느 날 말다툼을 벌이다가 끝내 “시키는 대로 하라면 해”라고 자존심을 꺾는 말을 했던 장면이 후회스럽게 떠올랐다.

‘나는 직원들에게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로는 턱도 없나보지?’라는 생각에 윤 변호사는 침울해졌다.

●입은 크고 귀는 작은 자기관리형 리더들

다면평가 결과를 분석한 한국리더십센터 대표이사 김경섭 박사는 “젊은 전문직 남성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리더로서의 장단점이 전형적으로 다 드러나는 경우일 뿐”이라고 진단했다.

먼저 상사나 부하직원이 모두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성실하다’ ‘매우 의욕적이다’에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보아 자기통제나 자아인식에 관련된 지수는 최상위권이었다. 윤 변호사는 교육대학을 졸업한 뒤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면서 법대 야간과정을 다녔고 본격적인 시험 준비를 위해 교단을 떠난 지 2년 만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이런 이력에 비춰 윤 변호사의 최대 장점은 자기 관리에 있다는 것.

김 박사는 이 유형의 젊은 남성들에게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윤 변호사의 경우도 ‘상대방의 말을 가로채지 않고 경청한다’는 항목에 본인이나 부하직원 모두 40점이라는 ‘낙제점’을 매겼다. 그러나 더 큰 차이는 ‘어려운 상황이나 감정이 앞서는 상황에서도 자제력을 유지한다’는 항목에서 드러났다. 윤 변호사 자신과 상사역을 맡은 아내는 만점인 100점을 주었지만 부하직원은 그 절반도 안 되는 47점을 주었다.

윤 변호사가 리더십에 대한 아무런 자기점검없이 10년쯤 더 지난다면 ‘내가 보는 리더로서의 나’와 타인, 특히 부하직원이 보는 나 사이의 점수차는 십중팔구 더 벌어질 터였다. 윤 변호사의 10년 정도 연상인 40대 중반 이상의 리더들에게서는 본인 평가와 타인 평가의 점수 차이가 30점 이상 벌어지는 예가 비일비재하다. 물론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하직원들은 공통적으로 ‘권위적이다’ ‘부하직원에 따른 고정된 선입견이 있다’ ‘부하직원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고집한다’는 단점을 지적한다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CEO들의 아내 역시 결혼 10년을 기준으로 남편에 대한 평가가 크게 바뀐다는 것. 결혼경력 10년 이하일 때는 거의 예외없이 CEO가 스스로를 평가할 때보다 그 아내가 더 관대하게 점수를 주는 데 비해 10년 이상일 때는 아내가 직장 상사보다 더 남편에게 박한 점수를 주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결혼 1년10개월째인 윤 변호사의 아내 원 판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상사역을 맡았던 원 판사는 윤 변호사에게 ‘의사결정이 필요할 때 단호하게 결정한다’ ‘일을 할 때 솔선해서 한다’ ‘삶의 방향이 명확하다’ 등에 100점 만점을 주었다. 세 항목 모두 윤 변호사가 스스로에게 매긴 점수는 80점이었다. 원 판사가 걱정하는 ‘부하직원’으로서의 남편의 문제라곤 “건강에 신경써야 한다”는 정도였다. “저는 느긋한 데 비해서 남편은 너무 열심히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하려고 합니다. 초임 변호사라 일이 많은 건 알지만 그래도 좀 쉬엄쉬엄 살았으면 해요.”

●포기한 상사에겐 욕도 아깝다

2박3일의 여정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나흘 뒤 윤 변호사의 사무실을 찾았다.

“저 좀 이상해졌다는 말까지 들어요. 변했다는 뜻이겠죠. 이번 주 목표는 ‘다른 사람 말 들어주기’ ‘직원들 칭찬하기’예요. 이렇게 수첩에 적어놓기까지 했잖아요.”

윤 변호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한 직원에게 혹시 윤 변호사가 빈말을 하는 것은 아닌지, 너무 짠 점수를 주어 된서리나 맞지 않았는지 슬쩍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상사가 고압적이고 개선여지가 없다고 판단했으면 ‘뒤탈 방지’ 차원에서라도 100점씩 ‘써 주고’ 말았을 것” 이라고 말했다.

사실 윤 변호사는 자수성가형 30대 전문직 종사자치고는 남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리하게 일을 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는 항목에서 윤 변호사 자신은 40점을 주며 스스로를 반성했지만 오히려 부하직원들은 그보다 높은 57점을 주었다. 또 ‘팀원들과 1 대 1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에 대해서도 윤 변호사는 자신에게 60점을 주었지만 부하직원들은 그보다 높은 85점을 주었다.

또 다른 직원은 “아예 포기해버린 상사라면 뭐하러 찍힐지 모른다는 부담을 안아가며 쓴 소리를 하겠느냐”고 말했다.

“발전 가능성이 있으니 달갑지 않은 ‘충언’도 할 수 있는 거죠. 제가 상사가 돼도 나 자신을 위해서 상향평가를 기꺼이 받을 것 같습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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