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짓는 집]시인은 가도 과거는 남는 것

  • 입력 2002년 3월 29일 17시 13분


지난 2월, 월북 시인 오장환의 전집이 출간됐다는 소식에 얼른 책을 구해 보았다. 오장환이 경영했다는 서점, ‘남만서방’에 대한 흔적이 남아 있을까 해서였다.

남만서방에는 절판본·호화본·진귀본 등이 가득했다고 하는데 작가 이봉구는 관훈동에, 작가 양병식은 안국동에 있었다고 회상하는 것을 보면 인사동 그 언저리쯤이 아니었나 싶다. 인사동 이겸로 선생이 ‘통문관 책방 비화’에 밝힌 해방 전 서점 목록에는 남만서방이 언급되지 않아 의아했는데, ‘오장환 전집’에도 그 얘기는 나오지 않아 무척 아쉬웠다.

필자는 처음에 ‘벽에 이상이 선물했다던 자화상이 걸려 있었다’는 이봉구의 회고 때문에 처음 남만서방에 관심을 두게 됐다. 서정주의 ‘노자 없는 나그네길’에 이상의 칭찬을 받고 좋아하는 오장환의 모습이 나오는 것을 보면 둘은 꽤 친했던 모양이다.

1940년대 이 남만서방에 드나들며 오장환에게 깊은 감화를 받은 10대 후반의 소년이 바로 시인 박인환이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책들에 이상의 자화상까지 걸려 있었으니 10대 소년이 어떤 충격을 받았는지는 눈에 선하다.

해방 뒤 ‘병든 서울’을 부르짖던 오장환이 갑자기 종적을 감추면서 남만서방은 문을 닫았다. 오장환이 북으로 갔다는 사실은 곧 밝혀졌지만, 남만서방의 책들은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 그 즈음에 박인환이 파고다공원 옆에 ‘마리서사’라는 서점을 열었으니 그리로 옮겨간 것일까? 마리서사는 꼭 외국서점 같았다고 한다. 폴 엘뤼아르의 호화판 시집이나 구하기 힘든 일본 모더니즘 잡지 등이 꽂혀 있었고 벽에는 달리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해방 직후 만주에서 돌아온 김수영이 박인환에게 난해시 강의를 들어야만 했던 곳도 바로 이 마리서사다.

남만서방의 책이 마리서사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이상을 좋아하던 오장환의 마음을 박인환이 그대로 이어받은 것만은 확실하다.

박인환이 마지막으로 발표한 시는 1956년 3월 17일 동아일보에 실린 ‘죽은 아프롱’이란 제목의 이상 추모시다. 이 시를 발표하고 이상을 기린다며 술을 마시다가 사흘 뒤 박인환은 숨을 거뒀다. 박인환이 숨을 거둔 곳은 복개되기 전 중학천변 골목길 안쪽인 세종로 135번지다. 지금은 사라진 그 자리에는 오장환과 박인환이 그토록 좋아하던 서점, 그것도 유명한 대형서점이 들어서 있다.

이 서점에 갈 때마다 나는 박인환을 떠올린다. 이어 연쇄적으로 마리서사와 남만서방과 오장환과 이상의 자화상이 생각난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초상을 걸어놓은 자리 한쪽에 그곳이 마리서사를 경영했던 시인 박인환의 집터임을 표시할 수는 없을까? 세상의 모든 서점이란 무엇을 하는 곳일까? 그저 책만을 파는 곳일까? 그게 아님을 남만서방과 마리서사가 증명하는 셈이다.

소설가 larvatus@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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