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기 기성전 도전 5번기 최종국. 기성전 10연패를 노리는 이창호 9단(27)과 정규 기전 첫 우승을 꿈꾸는 목진석 6단(22)이 3월 28일 한국기원 특별대국실에서 마주 앉았다. 이 9단은 지금까지 정규 기전 도전기에서 후배 기사들의 도전을 모두 뿌리쳐 왔다. 만약 목 6단이 이 판을 이겨 타이틀을 따면 한국바둑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게 된다.
돌을 가리자 이 9단의 흑번. 순간 목 6단의 얼굴엔 실망한 표정이 스친다. 지금까지 둔 도전기 4판이 모두 흑번 필승이었기 때문. 목 6단은 그 징크스를 없애려는 듯 초반부터 거세게 부딪쳐 간다.
오후 1시 점심시간까지 47수. 평소보다 빠른 진행이다. 형세는 팽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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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후 대국이 시작되자마자 이 9단이 상변 전투에서 큰 실수를 저질러 목 6단이 한발 앞서 나가기 시작한다. 이 9단의 손길이 한없이 느려진다. 한 수 한 수마다 역전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이 9단은 ‘후배에게 정상의 자리를 내주기에는 아직도 나는 젊다. 여기서 져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하지만 목 6단의 응수는 정확하기만 하다. 이 9단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빈도가 점점 늘어나고 그의 얼굴엔 번뇌의 그림자가 가득해졌다.
목 5단은 상변 흑대마를 몰아가며 중앙과 하변 일대에 거대한 세력을 만들었다. 자, 이제 마지막이다. 초읽기에 몰린 이 9단에 비해 시간도 30분 정도 여유가 있다. 백이 중앙과 하변 세력을 집으로 만드는 말뚝을 박으면 흑이 도저히 덤을 낼 수 없다. 검토실에 모여 있던 기사들도 ‘목기성이 탄생했다’며 검토를 그만 둔 상태.
하지만 마지막 망치질을 하는 목 6단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장면도 백 1은 너무 허술한 수였다. ‘가’에 한발 물러섰으면 백은 큰 집을 지으며 무난히 이길 수 있었다. 이 9단은 초읽기에 몰린 상황에서도 ‘나’와 ‘다’의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하며 하변에서 대궐을 짓고 살아버렸다.
258수끝 흑 2집반승. 허망한 승부였다. 42.195㎞를 잘 달려온 마라톤 선수가 결승점을 몇 미터 앞두고 넘어진 꼴이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날려버린 목 6단은 “수고했다”는 기원 관계자의 위로의 말에 웃어보이려고 했지만 그의 얼굴엔 그저 쓴 미소만이 피어났다.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