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대 한약자원학과 도은수 교수(44)는 제자인 정성진씨(50) 가족을 이렇게 소개했다. 도 교수의 장담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들이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그것도 같은 학번으로 다니는 경우가 어디 흔한 일인가.
정씨와 아내 도청향씨(50)는 올해 이 학과에 3학년으로 편입한 만학도. 막내 아들 지용씨(20)는 지난해 수능시험을 치르고 같은 학과에 입학한 신입생이다. 학년이 다르지만 학번은 모두 ‘02학번’이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스토리가 현실로 이뤄진 것은 정씨의 끝없는 향학열 때문. 가업을 이어 대구 약전골목에서 한약 도매상을 운영하는 정씨는 젊은 시절 늘 배움에 목이 말랐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회초리를 맞아가면서 한학과 한약에 관한 공부는 할만큼 했지만 고등학교를 끝으로 정식 교육을 마친 게 늘 아쉬웠던 것.
30대 중반 방송통신대 진학을 시작으로 정씨의 만학은 시작됐다. 정씨는 “배우면 배울수록 배움에 대한 욕구가 새로이 솟아올랐다”고 말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중국 유학. 38세가 되던 해, 정씨는 홀몸으로 중국 유학길에 올랐다.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대 중의과를 5년만에 졸업하고 중의사 자격증을 따고서도 그는 공부를 쉬지 않았다.
이번에는 아내도 배움의 길로 끌어들였다. 부부는 나주대 한약자원개발학과에 나란히 진학했고 2년간 공부를 마친 뒤 미진한 부분을 더 배우기 위해 중부대 편입 시험에 응시했다. 아내 도씨는 “함께 공부를 하면서 남편의 고충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면서 “진학을 권유해준 남편이 더없이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정씨 부부는 동기생들이 대부분 아들뻘이지만 스스럼없이 한데 어울려 다른 학생들과 똑같은 대학 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무주리조트에서 있었던 2박3일의 학과 MT에도 생업을 뒤로 하고 부부가 함께 참가했다. 학생들과 함께 밤늦게 술잔을 기울이고 운동장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이 주름진 얼굴만 가리면 영락없는 대학생이었다.
막내 지용씨가 한약자원학과를 지원한데는 사연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지용씨는 크게 아픈 적이 있었다. 도씨는 “부모가 강요하진 않았지만 가업을 이어야할지 말아야할지 혼자 고민하면서 생긴 부담감이 아들의 몸과 마음을 짓눌렀던 것 같다”고 말했다.
1년반 동안 아버지가 지어주는 한약을 먹고 침을 맞는 동안 지용씨의 마음은 스스로 변해갔다. 몸이 점점 좋아지는 것과 함께 한방에 대해 신비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 그때의 체험이 지용씨를 한약 전공으로 이끌었다.
한약은 정씨 가족에게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도구 이상의 어떤 특별한 ‘힘’을 발휘했다. 지용씨의 인생 항로를 결정한 것도 그렇고 정씨와 도씨가 인연을 맺은 것도 한약 덕분이다.
20대 초반일 때 도씨는 악성빈혈 위궤양 등 각종 질환으로 몸을 가눌 수 없을만큼 앓았다. 도씨는 “병원에서도 치료가 힘들다고 해서 그때는 그대로 죽는 줄 알았다”고 털어놨다.
도씨는 그때 직장동료이던 정씨 조카의 손에 이끌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씨의 한약방을 찾았다. 정씨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기 몸도 돌보지 않고 일하다 병에 걸린 도씨를 본 순간 연민의 정이 일었다. 1년간 정성을 다해 치료하는 동안 연민의 정은 연정으로 바뀌었고 도씨가 완쾌한 뒤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렇게 부부의 정을 맺은 두 사람은 이제 학생 신분으로 한 길을 걷고 있다. 중부대를 졸업하고 나서도 계속 공부를 할 계획인지 묻자 정씨는 이미 계획을 세워둔 듯 곧바로 “중국에 다시 가서 공부를 더해볼까 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50이라는 나이는 뭔가를 매듭짓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한 10년 정도는 더 공부에 매진할 생각이라고. 도씨도 남편의 일을 본격적으로 도울 수 있을 때까지 계속 공부할 계획이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다는 듯 끊임없이 새로운 공부에 도전하는 정씨 부부. 그들에게 대학 공부는 지식을 넓히는 것만이 아니다. 인생 전체를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이다.
무주〓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