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나이 쉰. 갱년기에 접어들고 자녀들은 하나둘씩 곁을 떠나 독립한다. 가장으로 군림해온 남편이 폭군처럼 여겨져 은근한 반발심이 싹튼다. “정년퇴직만 하면…”하고 벼르면서 ‘나만의 삶’을 꿈꾼다.
요즘 일본 50대의 단면이지만 한국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모두들 “이 나이에 뭘 새삼스럽게 부부관계를 고쳐보겠다고…” 체념하지만 인생은 결코 짧지 않다. 오히려 정년퇴직을 앞두고 어떻게 관계를 새로 만드느냐에 따라 노년기 행, 불행이 달라진다.
오가타 마사히로(尾形誠宏·74) 전 고베시간호대학 단기대학부 학장. 뇌신경외과 의사이기도 한 그는 최근 자신의 가정사와 환자상담 등을 통해 겪은 일들을 ‘50세부터의 부부혁명’이란 책으로 펴내 일본에서 화제다. 그 자신은 어떤 혁명을 일궈왔을까.
“젊었을 때는 일밖에 몰랐죠. 마누라는 집안식구 중 한명일 뿐이며 가사나 육아를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4세 때 부친이 세상을 떠나면서 홀어머니와 할머니를 함께 모셔온 종손. 부부관계보다는 전체 가족을 우선시한 것은 당연했다. 집에서 부인 게이코(桂子·65)를 마주 대하는 것은 잠잘 때 뿐.
30대 후반 캐나다에 2년간 단신유학을 다녀온 뒤 첫 번째 혁명에 착수했다. 부부중심의 외국 가정을 보고 나서 부부응접실을 만들었다. 어머니의 눈치가 보였지만 결국 자신이 가장 오랫동안 함께해야 할 사람인데.
두 번째 혁명은 50대. 뇌경색으로 쓰러진 모친을 10여년간 병구완을 하는 부인에게 한없이 미안했다. 부인도 마침 대학에 강의를 나가면서 이것저것 주문이 많아지고. 이때부터 가사를 조금씩 분담하기 시작했다.
“집안일이요? 처음엔 어려웠죠. 간단한 것 같은데 잘 안 되니 자존심도 상했습니다. 하지만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서로 짐은 되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했죠.” ‘실력’을 닦아온 덕분에 5년 전 정년퇴직한 이후에도 큰 굴곡은 없다.
부인들은 대부분 정년퇴직 후 집에 있는 남편 때문에 여행은커녕 맘놓고 외출도 못한다. 또 하루종일 같은 공간에서 지내다보면 서로의 결점에 진저리가 난다. 그러나 남편이 조금만 용기를 내 집안일을 해보면 모두가 평온하다.
그는 집에서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부인은 봉사활동 등으로 일주일에 서너번 외출한다. 때문에 점심은 혼자 해먹고 저녁도 두세번 지어 부인과 함께 먹는다.
함께 외출하는 것은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간섭은 피하되 대화는 충분히 갖는다.
“옛날에는 정년퇴직하면 인생이 끝나는 것 같았지만 이제는 퇴직후에도 10∼20년은 남았잖아요. 남자나 여자나 스스로 노인이라고 체념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멋지게 만들어 가야지요. 그런 면에서 노년기 배우자는 서로 훌륭한 동반자가 될 수 있습니다.” 힘주어 말하는 그의 옆에서 부인 게이코씨가 빙긋이 웃었다.
▼책에 어떤 내용 담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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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 후 변화하는 것은 너무 늦다. 50대부터 퇴직 후 부부생활을 대비하라.’
오가타 박사의 ‘50세부터의 부부혁명’은 무엇을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를 일러준다.
먼저 남편의 자존심을 지켜주면서 가사에 참여시킬 것을 권한다. 평생 가사를 전담한 부인은 분담을 원하면서도 남편이 부엌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것도 모르냐”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낫지”라며 잔소리한다. 남편이 평생 가족을 부양해온 ‘공로자’임을 잊지 말고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켜준다.
각자 생활은 존중하되 ‘공통의 장’을 가진다. 부인은 나이가 들수록 친구들과의 자유로운 시간을 원하지만 남편은 따뜻한 가정을 원한다. 젊은 시절부터 한두가지 공통의 취미를 갖는다.
장년기에는 또 무심코 한 말이 상처가 되기도 한다. “당신 망녕난 것 아니우” “낫살이나 먹어가지고”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낫지” 등등. 그렇지 않아도 나이들면 섭섭한 게 많은데 더욱 서러워진다.
50대 이후의 성도 중요한 부분. 여성과 남성은 갱년기 이후 신체 및 성의식 변화가 다르다. 서로 자신의 변화를 솔직하게 표현하며 애정과 신뢰감을 키워나간다. 이 밖에도 △노후에 대해 많이 대화하고 △배우자를 카운슬러로 최대한 활용하며 △자원봉사 등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할 것 등을 제안했다.
오사카〓이영이 특파원 yes20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