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술마시기 동호회 활발

  • 입력 2002년 4월 3일 17시 15분


“우주회(雨酒會)를 아시나요.” 최근 한 중견 기업 사보에 소개된 글 제목이다. 이 모임은 사내 미혼 남녀들이 비(雨)가 오면 별도 약속을 하지 않아도 회사 인근 호프집에서 술(酒)을 마시기로 한 재미있는 동호회다.

괜히 비가 오면 집에 가기 싫고 술이 한잔 생각나기 마련인데 이런 동호회를 만들어 놓으면 ‘오늘 저녁 약속있냐’는 전화를 일일이 하지 않아도 마음맞는 남녀가 옹기종기 모여 비오는 분위기를 즐길 수 있어 사내 인기모임으로 자리잡았다. 봄 가뭄철에는 모임이 적다가 장마철에 모임이 집중되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사랑의 썰물’의 가수 임지훈도 자체적인 ‘우주회’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폭회(千爆會). 폭탄주 1000잔을 마시고 해산하자는 모임이다. 과천 몇몇 공무원들이 고교동창들을 중심으로 만들었다. 각자가 마신 폭탄주를 모두 합쳐 1000잔까지만 마시자는 농담처럼 나온 말에서 시작됐다. 엘리트 공무원들답게 술자리에서도 정책이 단골 메뉴. 술이 도는 만큼 자유스러운 가운데 아이디어가 많이 속출하고 비판할 것은 솔직히 강도높게 비판한다. 멤버들 사이에서는 소중하게 여겨지는 모임이다.

개성있는 연극배우 이호재의 팬클럽이름은 ‘빨간 소주’. 빨간색 병뚜껑을 가진 소주만 마시고, 술잔은 맥주컵을 사용하며, 참석자들은 각자 1병을 마시되 절대 술을 권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이호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의 술습관에 이름을 붙인 팬클럽이름이다. 연극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소주집에서 뒤풀이와 함께 평가가 이뤄진다.

인터넷에도 술을 좋아하는 동아리 모임이 활발하다. 벌써 발족 6년을 헤아리는 하이텔의 ‘술사랑동호회’는 소규모 친목모임에서 시작됐으나 지금은 3500명 이상의 회원을 자랑하는 대규모 모임이 됐다. 술을 사랑하는 데 직업과 나이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교수도 있고 학생도 있다. 의사나 변호사가 있는가 하면 실직자도 어엿한 회원이다. 이 모임은 다양한 인물들이 만나는 만큼 질서도 엄격하다. 나이 선후배가 확실해야 실수가 없다는 설명이다. 1년에 정기모임이 7회.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게릴라식 비정기모임은 횟수를 알수 없다.

술의 의미는 두 가지다. ‘취함’이라는 술 자체의 물리적 의미와 ‘어울림’이라는 사회적 의미. 이런 본질적인 술의 속성 때문에 앞으로도 술을 매개로 한 건전한 동호회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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