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일기]책 읽어주는 엄마

  • 입력 2002년 4월 4일 14시 42분


봄 햇살이 따스하게 감싸든 오후, 버스를 타고 내게 독서지도 수업을 받을 아이집으로 가고 있었다. 한 정거장을 가니 아이를 업은 젊은 엄마가 내 뒤에 와 앉았다. 버스가 어느 대학교 정문 앞에 서자 아이 엄마는 “저기 운동장에 형들이 축구하네” “우리 저기로 구경갈까?” 대답은 없어도 업은 아이의 표정을 힐끔힐끔 돌아보며 이야기를 계속 한다. 그걸 보자 내가 첫 아이 키울 때가 생각나서 뒤에 앉은 엄마에게 말을 걸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나도 20대 중반에 큰 애를 낳아 업고 다니며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요즘같은 계절에 봄나들이를 가면 공원에 앉아 풀 이름, 꽃 이름, 나비, 벌, 지나가는 예쁜 아기들의 모습 등 대답도 없는 아이에게 수다쟁이처럼 재잘거렸다. 보행기를 타기 이른 시기인 3개월때부터 잠깐씩 보행기에 태워 놓고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글자가 크고 그림이 많은 걸 선택해서 아이 앞에 놓고 보여주며 읽었다. 큰 아이는 중학생인 지금도 책을 즐겨 읽는다.

그러나 둘째는 전혀 그렇게 해 주지를 못했다. 큰 애가 돌을 지나면서 둘째를 가지게 됐다. 두 살 터울로 키우다 보니 하루종일 집안일에 두 아이들 뒷바라지까지 내가 지쳐서 그런 여유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둘째는 책하고는 거리가 멀다.

나는 종종 내게 독서교육 받는 아이 엄마들로부터 “책을 안 읽어서 죽겠어예”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나이들어 독서습관을 들이는 것은 그만큼 힘도 들고 또 쉽게 안된다. 독서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밑거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그걸 빨리 깨우쳐서 시작하는 부모는 적은 것 같다.

뒷좌석에 앉은 엄마에게 내 경험담을 이야기 해 주고 싶었다. 엄마의 용기와 지혜를 칭찬한다고. 하지만 너무 주책없는 일이 아닐까 망설이다가 내릴 정류장에 닿고 말았다.

주현애 39·대구시 달서구 이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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