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광스님을 묘사한 이 겸허하고 솔직한 토로의 주인공은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형국(金炯國·60) 교수다. 이 글은 중광스님이 2년 전 가나아트센터에서 ‘괜히 왔다 간다’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할 때 도록에 쓴 발문이다.
김 교수는 이미 천재화가 장욱진(張旭鎭·1917∼1990)과 18년간 교류하면서 ‘그 사람 장욱진’(1993·김영사), ‘장욱진, 모더니스트 민화장(民畵匠)’(1997·열화당)등 2권의 저서를 통해 화단에서는 장욱진 전문가로 잘 알려진 사람이다. 그림에 관해 전문적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김 교수는 생전에 사람 가리기로 유명하고 마음이 없으면 절대 말을 건네지 않았다는 장욱진 선생과의 ‘체험적 사랑’을 글로 표현했다고 말한다. 김 교수가, 생전에 장화백과 교분이 두터웠던 중광스님과도 교류가 이뤄졌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
경남 마산출신으로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와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도시계획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1975년이래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그동안 환경대학원 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앞서 나열한 김교수의 ‘건조한’ 이력 뒤에 장화백과 중광스님과의 교류가 숨어 있었 듯, 김 교수가 펴낸 신간 ‘고장의 문화판촉-세계화 시대에 지방이 살 길’(학고재)이라는 건조한(?) 제목 뒤에는 김 교수의 평생 화두였던 ‘문화’에 대한 모든 것이 살아 숨쉬고 있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문화가 중요하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문화 수준이 높아지지 않고는 경제성장은 더 이상 없다’고 이야기 하지만 정작 그 문화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한다. 평소 인간의 모든 삶을 ‘문화’라는 키워드로 풀어 내 ‘문화주의자’로 자처해 온 김 교수는 이번 책에서 ‘문화는 아름다움이다’는 언명속에 깊이있는 문화론을 펼쳐내고 있다.
“문화를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기대하는 바람직한 가치의 실현’이라고 전제할 때 그 가치는 한마디로 ‘아름다움’입니다. 아름다움은 착함 또는 어짊과도 같은 말이죠. 외양만 지칭하는 것도 아니고 내면을 가리킬 때도 똑같습니다. ‘아름다움’은 문화의 상징어라고 할 수 있지요.”
책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대목은 ‘제8장-문화라는 것’이다. 문화〓아름다움이라고 할 때 그 아름다움을 대략 아홉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진실, 둘째 완벽, 셋째 자연, 넷째 전통, 다섯째 이설(異說), 여섯째 신명, 일곱째 예절, 여덟째 손맛, 아홉째 작은 것 등이다. 대부분 고개가 끄덕여 지지만 다섯째 ‘이설’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아홉가지 중에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정설(定說)과는 반대인, 주류가 아닌 이야기, ‘남과 달리’ ‘상식과 달리’ ‘기존(旣存)과 달리’ ‘튀려는’ 용기있는 행동이지요. 문화란 상대주의이며 절대 가치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개성이고 차별성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 길로 달려갈 때 다른 길을 찾는 것이 바로 문화지요.”
“통념에 의문을 갖지 않고는 다른 길이 보이질 않습니다. 역설과 이설에 너그럽지 않고선, 이들이 만드는 차이에 익숙하지 않고선 문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이설은 아름다운 것이지요.”
이런 논지속에서 김 교수가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세계화 시대라고 해서 모두들 밖으로 나가는 것만 생각하는데, 세계 사람들을 어떻게 안으로 불러들일까 하는 것도 똑같은 고민입니다. 그 역할은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이뤄져야 하고요. 지방자치제 이후 1년에 200여 축제가 펼쳐 지는데 아직까지 진정한 문화적 사고로 기획된 행사들이 많지 않아요. 베끼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똑같이 베끼지 말고 좀 다르게 베껴야 경쟁력이 생기지요.”
이 책은 문화이론에 대한 인문학적 소양을 쌓으려는 독자들에게도 도움될 성 싶지만 지역에서 문화 실무기획에 참여하고 있는 공무원들에게 도움이 될 듯하다.
김 교수는 “그동안 ‘문화주의자’라는 자처가 본업과는 무관한 한량놀음이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을까 자책했는데 책을 통해 문화를 지역발전에 접목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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