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대체 그 계곡에 뭐가 있기에…'빛의 돌'

  • 입력 2002년 4월 5일 18시 03분


◇빛의 돌 (전 4권중 2권.4월말 완간)/크리스티앙 자크 지음/성귀수 옮김/각권 500여쪽/9800원/ 북@북스

생은 유한한 것일까, 아니면 영원한 것일까.

이 물음은 모든 종교와 철학적 사유의 출발점이다. 이 물음이 중요한 것은 각자 믿는 바에 따라 ‘지금의 삶’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람세스’의 작가 크리스티앙 자크는 ‘영원’을 믿는 사람 같다. ‘람세스’ 후속으로 선 보인 장편소설 4부작 ‘빛의 돌’은 또 다시 이집트 코드를 통해 불멸(不滅)을 믿었던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람세스’가 육신을 가진 유한한 한 인간의 불멸성을 그려 낸 것이라면 ‘빛의 돌’은 당대를 살았던 생활인들의 시선으로 불멸을 그렸다.

하긴, ‘불멸’을 이야기하는 데 이집트만한 소재가 어디 흔한가? 거대한 피라미드, 신성한 상형문자로 뒤덮인 웅장한 신전들 앞에서 우리는 절대를 믿었던 사람들의 창조력에 대해 전율한다. 이 엄청난 구축물을 설계하고 감독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거대한 돌덩이를 옮기고 깎고 다듬은 석공은 그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크리스티앙 자크는 이런 호기심을 갖고 기원 전 16세기 이집트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탐구해 간다.

이집트 무덤하면 보통 피라미드를 연상하지만 지금의 나일강 서안, 서 테베에 가면 세계적 관광 명소인 ‘왕들의 계곡’이라는 곳이 있다. 이 곳은 산봉우리가 우뚝 우뚝 솟아 있는 험준한 계곡들이 이어진 곳인데 1800년대 후반부터 난데 없이 작은 무덤과 집기들이 발견된다. 1921년 프랑스의 고고학자 베르나르 브뤼예르는 본격적인 발굴 작업을 개시, 30년이나 지난 뒤인 1951년 지하 50m 에서 거대한 문서 보관소를 발견한다. 이 곳은 다름아닌 투트모시스 1세(BC 1506∼BC 1494)가 피라미드를 도굴꾼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왕의 석실(‘영혼의 거처’)을 옮기기로 하면서 만들어진 무덤. 여기서 발굴된 문서들에는 무덤을 만들었던 사람들과 그들의 종교의식, 그들이 살았던 마을을 중심으로 한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새 무덤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가한 사람들은 피라미드를 만들던 노예들과는 달리 도안 도장(塗裝) 조각 건축 금속세공 등 분야에서 당대 최고 실력을 자랑하는 극소수의 엘리트 예술인들이었다. 왕은 엄격한 과정을 통해 이들을 선발, 새로 만들어질 무덤 옆에 그들만의 낙원을 만들어 준다. 이름하여 ‘진리의 장소’다. 이 곳은 철저히 외부와 차단돼 법정 학교 신전 등 모든 시설이 갖춰진 공동체 마을로써 왕은 이들에게 최고 수준의 의식주를 제공한다.

이집트학 박사이며 상형 문자를 신문 읽듯 읽고 열 일곱에 카이로로 신혼 여행을 한 뒤 지금까지 150번도 넘게 이집트를 드나 든 작가 크리스티앙 자크는 바로 이 문서에 소개 된 예술가들 이야기를 책으로 펴 내기로 한다. 이 책의 모양은 소설이지만, 사실은 고증에 의거한 논픽션인 셈이다.

소설의 무대는 이집트 신왕국 시대 (BC16세기 중반∼BC11세기 중반)라 일컬어지는 혼란기. 저자는 성(聖)과 속(俗)이라는 두 개의 축을 통해 소설을 엮어 나간다. ‘성’은 장인 공동체 마을 ‘진리의 장소’ 세계이며 ‘속’은 마을 외부 세계다. ‘성’의 사람들은 인간 영혼의 불멸성을 믿는 사람들이며 ‘속’의 사람들은 현재의 삶이 단 한번 뿐이라고 믿기 때문에 권력이든, 돈이든, 쟁취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두 세계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장인 공동체 마을의 우두머리인 ‘네페르’와 전차 장교 ‘메히’.

메히는 어느날 ‘진리의 장소’ 마을 부근을 지나다 ‘빛의 돌’의 존재를 목격하고 이 돌이야말로 세속의 절대 권력을 가능케 하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 믿게 된다. 그는 이것을 차지하려고 ‘진리의 장소’를 와해하는 데 전 생애를 건다. 그러나 ‘빛의 돌’은 왕의 육신이 안치되는 ‘황금의 처소’에서 왕의 영혼을 불멸로 만드는 마지막 의식을 치를 때 없어서는 안 될 신성한 보물이다.

소설은 ‘빛의 돌’을 둘러싸고 ‘속’의 관점(세속적 권력)에서 차지하려는 자들과 ‘성’의 관점(숭고한 이상, 믿음)에서 지키려는 사람들 간의 투쟁을 박진감있게 펼쳐 낸다. 람세스 2세 말기부터 람세스 3세 즉위까지 약 40여년에 걸쳐 어지러웠던 이집트의 시공간은 크리스티앙 자크에 의해 ‘빛의 돌’을 매개로 ‘성’과 ‘속’이 부딪치고 때로 하나가 되는 결전장(決戰場)이 되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소설적 재미 외에도 저자가 풀어 내는 고대 이집트 예술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찬탄을 불러 일으킨다. 저자는 당대 장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집트 예술의 기본 원리, 세계관, 종교관을 설파하고 상형문자 쓰는 법, 색 만드는 법, 길이의 단위, 인체의 비율과 같은 고대 지식을 흥미롭게 전달한다. 저자는 이야기의 외관을 미스터리 기법으로 풀어 내면서 평생 신의 가르침을 따르며 불멸을 향해 예술 세계를 고양시키는 외길을 걸었던 예술가들의 구도 이야기를 그린 셈이다. 동시에 이 책은 의학 풍습 축제 등 당시 이집트인의 일상과 생활에 관한 저자의 거의 박물학(博物學)적인 지식이 요소요소에 살아 숨쉬는 풍속소설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변화무쌍한 현대의 일상에서 시류에 편승해야 하고 겉 다르고 속 다르게 행동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끝끝내 우리가 지켜야 할 절대적 가치, 즉 이상이나 정의같은 초월적 가치들이 분명히 있다고 강조하려는 것 같다. ‘속’의 우두머리인 메히가 ‘빛의 돌’을 차지 하기 위해 살인을 하고 온갖 음모를 꾸미지만 결국 패(敗)하고 ‘성’의 사람들이 이기는 구도로 이야기를 마무리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기자가 읽기에 메히는 단순히 권력욕에 가득 찬 속물만은 아니었다. 그는 이집트를 모든 미신으로부터 해방된 순수 과학의 일등 국가로 만들어서 인간이 자연을 정복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진 사람이었다. 메히는 당대 이집트의 혼란이 불멸이니 영혼이니를 외치는 뜬구름 잡는 사람들에 의해 빚어졌던 것이기 때문에 과학이라는 무기로 개혁을 하려고 했던 인물이었다. 결국 이집트의 역사는 이런 ‘성’과 ‘속’의 길항(拮抗)속에서 다시 안정을 찾는다.

그러니, 과연, ‘성’과 ‘속’은 같은 세계인가, 다른 세계인가.

불멸이나 절대는 과연 있을까.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기자의 뇌리에 남는 질문들이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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