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핵은 신문… 독자만을 두려워 하라"

  • 입력 2002년 4월 7일 18시 08분


‘메이저신문 국유화’와 ‘동아일보 폐간’ 운운하는 흉흉한 소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보낸 신문의 날(7일)은 그 어느 때 보다 착잡했다. 대통령이 되고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못할 것이 없다는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에도 전율을 느낀다.

하지만 언론학자들은 이럴 때일수록 언론이 사명감을 갖고 오직 독자만을 두려워하며 저널리즘 본연의 기능을 다해 줄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신문은 매스미디어의 종가(宗家)이자 명문(名門)’이라는 것이다. 또 언론과 권력의 갈등은 ‘필요불가결(Necessary)’한 차원을 넘어 ‘자연스러운(Natural)’ 일이자 ‘피할 수 없는(Inevitable)’ 숙명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언론인들의 분발을 당부했다.

언론학자들은 특히 지난해 언론사 세무조사로 인해 정치 권력과 정면으로 충돌한 신문이 올해 대통령선거 등을 앞두고 상식과 평상심의 기초 위에 공정하고 엄정 중립적인 비판과 감시기능을 수행해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학자 10명에게 신문과 권력, 신문과 방송의 관계, 21세기 신문의 덕목, 권위지의 역할과 사명 등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편집자>

신문과 권력은 태생적으로 갈등 관계다. 신문과 권력은 상황에 따라 적대와 공생 관계를 오가기도 하지만 신문의 본질적인 기능이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 감시이므로 이로 인한 양자의 갈등과 충돌이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고려대 조용중 석좌교수는 “권력은 속성상 신문의 경영이나 편집에 간섭해 비판의 칼을 무디게 함으로써 불화와 충돌을 일으킨다”며 “그러나 언론 통제의 충동을 이겨내지 못한 권력은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 세계 언론사의 가르침”이라고 말했다.

언론학자들은 하지만 지난해 언론사 세무조사 이후 신문과 권력이 충돌한 여파로 신문들이 올해 대선 등에서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면 독자로부터 외면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세대 서정우 특임교수는 “올해는 대선과 지방선거로 인해 어느 때보다도 더 균형잡힌 시각에서 날카로운 비판과 지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려대 원우현 교수는 “이럴 때일수록 공정하고 정확한 보도를 기초로 권력에 대해 독립성을 유지해 신문의 원군인 독자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언론사 세무조사를 계기로 빚어진 신문과 방송의 갈등에 대해서는 한국 방송의 ‘태생적’인 친정부 성향과 광고 시장을 둘러싼 갈등구조가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또 다매체 시대 방송의 사회적 영향력 확대로 분석하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외국어대 김우룡 교수는 “한국의 방송은 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나 인사권 개입 등으로 ‘태생적’으로 친여적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우며 이로 인해 지난해 신문과 갈등을 빚었다”고 분석했다.

원우현 교수는 “최근 신문과 방송의 갈등은 한국 사회가 본격 다매체 시대로 진입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빚어진 것이며 신문은 향후 이같은 추세를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학자들은 또 신문과 방송은 매체적 속성이 판이하게 다르므로 영역 다툼이 아닌, 상호 보완 기능을 수행해야 서로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림대 유재천 교수는 “방송은 저널리즘보다 오락적 문화적 기능이 강한 매체인 반면 신문은 심층적이고 지속적인 보도를 통해 국가적 의제 설정(Agenda Setting) 기능에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성공회대 최영묵 교수는 “문제는 신문이 다원화 다매체 환경 속에서 의제 설정 기능을 이전만큼 수행하지 못하는 데 있다”며 “분석과 심층, 비판 기능이 탁월한 신문은 전통적 저널리즘 차원에서 국가적 아젠다를 지속적으로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학자들은 21세기 신문의 덕목은 20세기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면서 기사의 전문성 제고, 독자 인권 강화, 미래 지향적 비전 제시, 시대 정신의 선도 등을 제시했다. 특히 정보 홍수의 시대인 오늘날, 신문은 ‘진리 앞에 오류가 맞설 수 없다’는 원칙아래 정보의 옥석과 거짓을 가려내야 타 매체를 압도하는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원우현 교수는 “신문은 명목적 권위나 전통에 안주하지 말고 디지털 기술의 변화를 흡수해 미디어 종가로서 위상을 다져야 하며 권위지들이 이를 선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정우 교수는 “자본주의 시대, 신문사의 이윤추구는 불가피하지만 공익과 언론의 정도를 위협하는 부수나 광고 경쟁은 장기적으로는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언론학자들은 특히 LA 타임스가 단기적으로 독자를 잊어버리고 경영 수지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바람에 지난해에 트리뷴사로 소유권이 넘어간 사례를 강조하며 한국의 신문들이 그같은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양대 이민웅 교수는 “공공 정보 제공과 함께 생활인으로서의 독자가 일상의 불안과 위험을 해결할 수 있는 정보도 제공해 삶의 향상에 이바지하는 ‘서비스 저널리즘’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널리즘의 표상으로 인정받는 뉴욕타임스는 국제적 안목과 폭넓고 심도깊은 의제 제시, 세련된 기사 작성, 미래의 비전에 입각한 기사로 그 권위와 위상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연세대 김영석 교수는 “권위지는 기자들의 폭넓은 식견과 전문성, 국제적 안목이 돋보인다”며 “한국의 권위지들은 세련된 감각과 지성, 미래지향적 안목과 비전, 그리고 남다른 직업윤리로 나라와 언론의 발전을 견인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전북대 김승수 교수는 “뉴욕타임스 같은 권위지는 권력과 자본에 대한 독립은 물론 한 건의 기사를 한 사람의 기자가 무려 50여명의 취재원을 만나 작성할 정도로 취재에 공을 들인다”며 “이같은 전문성과 저널리즘적 엄격성이 독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자산”이라고 말했다.

허엽 기자 heo@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김수경 기자 sk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