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어린이박물관 "실컷 놀다보면 저절로 미술교육"

  • 입력 2002년 4월 9일 15시 19분


고양이가 새겨진 동판에 셀프콘지를 댄 뒤 밀대로 문질러 보고 있는 이호정양과 어머니 박진선씨
고양이가 새겨진 동판에 셀프콘지를 댄 뒤 밀대로 문질러 보고 있는 이호정양과 어머니 박진선씨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한 주부 박진선씨(34·강원 속초시 교동)는 최근 딸 이호정양(7)과 아들 승희군(4)의 손을 잡고 서울 송파구 신천동 삼성어린이박물관 2층에 마련된 ‘그림 동물원’을 찾았다.

박씨는 남매에게 박수근 작품 ‘고양이’를 보여준 다음 그림 아래 놓인 ‘체험 미술 도구’들을 이용해 직접 고양이 그림을 ‘만들어보게’ 했다. 반부조로 고양이 모양을 뜬 동판 위에 특수종이인 셀프콘지를 덮고 밀대로 문질러 보게 한 것.

호정이와 승희는 종이 위에 ‘떠오르는’ 고양이 모양이 신기해 몇 번이고 밀대를 문질렀다. 박씨는 “게임하듯 회화의 세계를 체험하게 만드는 전시회라 어린이들에게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워주는 데 대단히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전시장이 오픈된 삼성어린이박물관의 ‘그림 동물원’은 이처럼 어린이들이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갖가지 체험학습용 도구들을 이용해 그림 자체를 ‘겪을 수 있도록’ 기획돼 화제다. 이 같은 ‘체험 미술전’은 국내에선 삼성어린이박물관이 99년 12월 ‘사람’을 주제로 외국 화가들의 명화(복사본)를 전시한 ‘아트 갤러리’ 이후 두 번째. 세계적으로 비교 사례가 드문 어린이 미술교육의 개척분야다.

‘그림 동물원’에 나온 그림들은 한국의 대표적 화가라 할 김환기(새 호랑이) 이중섭(소) 박수근(소) 김기창(새) 장욱진(닭) 등 9명 화가의 23점이다.

놀이와 학습이 함께 하는 아이디어는 이번 전시물 대부분에 적용됐다. 새를 그린 김환기 작품 ‘비조’의 좌우 벽에는 어린이들이 손을 넣으면 실제 깃털을 만져볼 수 있는 박스들이 매달려 있다. 박수근의 ‘아이 보는 소녀’ 옆에는 아이들이 그림 속의 소녀처럼 인형을 포대기로 감싸 업고서 거울에 비춰볼 수 있도록 했다. 거울 표면에는 ‘아이 보는 소녀’의 그림을 입히고 정확히 소녀의 윤곽 만큼 도려내 표면이 드러나도록 한 것.

이처럼 ‘그림과 함께 노는’ 분위기 때문에 ‘그림 동물원’은 이 박물관 입장 어린이들의 발길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 되고 있다. 1일 최대 1500명 정도가 찾아온다. 특히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울의 외국인 학교 학생들이 단골 고객들이다.

어린이들이 장난감 지렁이를 그림 속의 닭에게 먹일 수 있도록 고안된 장욱진의 '닭과 아이' 코너.

관람을 마친 다음에 1000원만 더 내면 ‘아트 워크숍’에 참여해 실제 작품들을 만들어 볼 수 있다. 우툴두툴한 사포 위에 크레용 그림을 그린 후 화병으로 만들기, 붓펜과 스프레이로 수묵화의 번지는 효과 체험해 보기 등이 주요한 프로그램이다.

‘그림 동물원’을 기획한 이 박물관 학예연구실 선임연구원 김진희씨(37)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라이드 어린이박물관에서 열린 마르크 샤갈 체험 미술전 등을 연구한 후 이번 전시회의 각 코너를 유머러스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고안해냈다. 김씨는 “유아들부터 초등학교 6학년생까지 누구나 미술을 즐기면서 깨우치도록 했다”고 말했다.

예를들어 박수근 작품 ‘고양이’ 코너의 경우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은 밀대 문지르기에 즐거워 하지만 고학년생들은 이 작품의 독특한 ‘마티에르 효과’를 알게 된다. 이는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반부조에 가깝게 덧칠하면 생기는 화면의 투박한 질감 효과다. 이 효과는 한국에 많은 화강암 재질을 나타내는 데 좋다. 돌에 새긴 그림처럼 보이게 한다.

‘그림 동물원’은 앞으로 2년간 상설전시된다. 입장권(5000원) 예매는 삼성어린이박물관 홈페이지(www.samsungkids.org)에서 할 수 있다. 한편 마네, 드가 등의 사람을 주제로 한 그림들로 구성됐던 이 박물관의 또다른 어린이 체험미술전 ‘아트 갤러리’는 광주시립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겨 4월 말 공개될 예정이다.

▼아이와 함께 미술관 나들이

미술관관람 때는 아이들이 현장에서 받은 느낌을 간단하게라도 즉석에서 표현해 볼 기회를 갖는 것이 좋다. 사진은 조선시대 분청사기를 본 뒤 그 느낌을 스크래치화로 표현하는 아이들.

그림도 보고 꽃도 보고…. 미술관 구경을 겸해 봄나들이를 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아이와 함께 찾아갈만한 전시회, 관람 요령, 준비물품은 무엇일까.

4월의 미술관 탐방은 이왕이면 자연의 변화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이 좋다.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인 덕수궁 미술관에서는 14일까지 ‘바보 천재 운보 그림전’이 열린다. 우화적인 ‘바보산수’ 등은 아이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그림. 이제 막 글자공부를 시작한 아이들의 낙서같은 ‘문자도’도 의미를 해석하려는 어른보다 형태를 보는 아이들이 더 호기심을 갖는다. 경복궁 내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는 7월14일까지 ‘조선시대 풍속화전’이 열린다. 김홍도의 ‘풍속화첩-씨름’, 신윤복의 ‘전모를 쓴 여인’ 등 조선시대 풍속화 200여점이 전시돼 있다. 초중등생들이 미술교과서나 거리에서 도판,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흔히 보아왔던 그림들이라 원화를 보는 감흥이 남다를 수 있다. 과천 서울대공원 안의 국립현대미술관에는 2층과 3층 사이에 독특한 원형 디자인의 ‘어린이미술관’이 따로 마련돼 있다. 어린이들의 작품과 한국 조각가들의 인물상을 볼 수 있다.

초등생을 대상으로 매달 미술관 탐방 수업 ‘발로 그리는 미술교실’(http://footart.wo.to)을 운영하는 정향숙씨는 △16절지 스케치북이나 종합장 △연필 △지우개 △가위 △풀 △붓 펜 또는 파스텔 등을 꼽았다. 미술관에서 받아든 입장권이나 팸플릿 등을 오려 스케치북에 풀로 붙이고 가장 인상적으로 본 그림을 그 자리에서 그려보게 하는 것. 파스텔은 빠른 시간 내에 표현하기에 좋은 소재다.

먼저 미술관에서 주는 자료들에 주목한다. 호암갤러리의 경우 전시마다 아이들이 보기 쉽게 기획의도, 주요 전시작품 등을 설명한 4쪽 분량의 ‘어린이 감상용 교재’를 나눠준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보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갈 수 있다. 현재 진행되는 전시회는 ‘격조와 해학:근대의 한국미술’전. 김기창 이중섭 장욱진 김환기 등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전문가 수준의 ‘자원봉사자’들을 길잡이로 삼을 수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박물관 연구반에서 10년 이상 강의를 들어 상당한 식견을 갖고 있기 때문. 타 미술관의 경우 시간대별로 있는 강의를 기다려야 하지만 박물관에서는 전시실에서 명찰을 단 자원봉사자를 찾으면 된다.

‘발로 그리는 미술교실’의 정향숙씨는 “미술관 나들이 마지막은 준비해간 도시락이든 미술관 인근의 소문난 맛집을 찾는 것으로든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음식을 먹으며 공부보다는 유쾌한 나들이를 했다는 기분을 나눠 갖는 것이 좋은 마무리”라고 조언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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