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가난하고 불쌍한 늙은 병사가 있다. 한쪽 다리는 아마도 전쟁에서 잃은 듯 의족을 하고 있고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조금만 이상한 일이 있어도 “쏘지 마시오! 항복이오!”하고 외치는, 몸도 마음도 약해져 있는 노병 바도글리오. 그가 어느날 어디선가 날아온 모자를 만나면서 잃어버린 따뜻한 마음과 용기를 되찾는다. 이 모자는 행인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화분을 받아내고 동물원에서 사라진 희귀한 새를 찾아오는가 하면 계단을 굴러떨어지는 유모차를 붙잡아 어린 아이의 생명을 살리기도 한다. 모자는 바도글리오의 명령에 따라 위기 상황을 척척 해결해 그를 영웅으로 만들고 결국 공주와의 결혼을 성사시키기까지 한다. 그리고 나서 모자는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홀연히 어디론가 떠나간다. 그 모자가 어디로 가서 또 누구에게 행운을 안겨다 줄 지는 하늘만 아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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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족에 멋진 바퀴를 단 유쾌한 그림을 보고 있자면 역시 ‘토미 웅게러’란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마지막 그림을 자세히 보면 모자가 날아가는 방향에 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있다. 모자가 누구를 도우러 가는 지는 하늘만 알 뿐이라고 했지만 실은 그 대상을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암시하고 있다. 벌에 쏘여 날뛰던 말이 모자를 덮어쓰고 멈추어 선 장면도 인상적이다. 말 앞에 무슨 일이 있느냐는 듯 천진한 얼굴을 하고 맨발로 놀고 있는 아기의 그림에서 어른들의 가슴을 철렁 하게 만드는 악동같은 웅게러의 성격을 찾아볼 수 있다.
토미 웅게러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났다. 스트라스부르는 2차 세계대전의 폭격과 독일의 알사스 지방 점령으로 혼란스럽고 위험했다. 폭격으로 집이 부서져 그는 지하실에서 3개월 정도 산 적이 있다. 그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어 그의 그림책에는 전쟁이나 군인의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애완동물로 보아뱀을 키우는 ‘크릭터’(시공주니어)나 버려진 곰 인형을 통해 전쟁의 상처를 표현한 ‘곰 인형 오토’(비룡소) 등의 책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현존 세계 최고의 그림동화 작가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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