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축역사학회 한국미술사학회 한국고고학회 내셔널트러스트운동 문화유산특별위원회 환경연합 등 23개 관련 학회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석굴암 토함산 훼손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 (이하 대책위)는 9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석굴암 역사유물전시관 건립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석굴암 역사유물전시관 건립을 둘러싼 논란이 그치지 않자 문화재청은 12일 오후2시 경주 석굴암에서 현장설명회를 개최해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어서 석굴암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현재 불국사의 계획에 따르면, 석굴암 역사유물전시관은 석굴암에서 남동쪽으로 100여m 떨어진 곳에 지하1층 지상1층 120여평 규모로 건립된다. 이 전시관엔 실물 크기의 석굴암 모형과 영상관 등이 들어선다. 예산은 52억원. 이 계획안은 지난해 10월 문화재위원회 1분과(건조물 담당)의 심의를 거쳐 승인을 받았다. 문화재청과 불국사가 석굴암 모형 등 석굴암 역사유물전시관을 짓기로 한 것은 국민들이 석굴암을 제대로 관람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석굴암 보존을 위해 1976년부터 본존불 앞에 유리 보호막을 설치해 관람객들은 석굴암의 진수인 본존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설립계획이 최근 뒤늦게 학계에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논란의 핵심은 위치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점. 대책위는 성명을 통해 “석굴암 본체에서 불과 100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역사유물관을 짓는 것은 문화유산을 훼손하는 행위로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상해 위원장(성균관대 교수)는 “석굴암 전시관을 짓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위치는 명백한 문화재 훼손” 이라고 말했다.
심의과정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대책위는 “이같은 중대 사안을 문화재위원회 1분과만의 심의를 거쳐 승인한 것은 절차상의 오류” 라면서 “문화재청과 불국사는 원점으로 돌아가 이 계획을 재고하라” 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 사이에선 “화강암이 아닌 합성수지로 석굴암 모형을 만든다면, 문화재로서의 감동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위치에 관계 없이 모형 제작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위원회 1분과의 한 위원은 “현재 예정 부지는 경사진 곳으로, 석굴암 본존불의 시야를 가리지 않고 주변 환경와 어울리게 건축할 수 있다” 면서 “심사숙고해서 결정한 사항인데 이런 식으로 몰고 가선 곤란하다” 고 말했다. 1분과 위원들은 대부분 12일 현장설명회에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문화재청은 “주변 환경을 해치지 않고 자연친화적으로 역사유물전시관을 지을 수 있다” 면서 “12일 현장설명회에서 논의된 사항과 지적을 검토해 시간을 두고 최대한 신중하게 처리해나가겠다” 고 밝혔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