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결혼한 아내 남현정씨(32)와 이곳으로 왔으며 현지에서 딸을 낳았다. 박 과장이 일반 주택을 구할 때까지 잠시 머무르기로 한 곳은 싱가포르 리버밸리에 자리잡은 20층짜리 ‘프레이저 스위츠(Fraser Suites)’. 싱가포르에 있는 12개 ‘서비스 레지던시(Serviced Reside-nces)’ 중 한 곳이다.
서비스 레지던시는 국내에는 생소하지만 국제화된 미국 주요 도시와 영국 런던, 싱가포르 등에서는 외국인 주거 공간으로 이미 보편화된 개념. 당초 한달 정도 머물기로 했던 박 과장은 이 곳에서 3년째 머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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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도와줄 사람도 없고 인근 국가로 자주 출장을 가기 때문에 가족들을 안심하고 맡길 데가 필요했어요. 여기서는 내집같은 분위기에서 고급호텔의 서비스를 누릴 수 있어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은 잘 맞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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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박 과장 가족이 제일 먼저 찾는 곳은 6층의 레스토랑. 이 층에는 수영장과 어린이 실내놀이터, 헬스센터 등 각종 편의시설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 숙박객들 대부분이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해결한다. 아침을 준비하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어서다.
아침 식사 후 박 과장이 출근하면 이후는 아내 남씨와 딸 희은이의 시간이다. 남씨는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레스토랑 앞 게시판을 살폈다. ‘오늘은 무슨 행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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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서는 한달에 보통 12회 정도의 문화 체험프로그램이 운영된다. 각국에서 온 가족들이 함께 어울리면서 타국생활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도록 레지던시 측이 주도해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부활절,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 추석, 설 등 각국의 주요 기념일과 명절 때는 별도 이벤트가 열린다.
“지난해 가을 염소농장 견학을 간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처음에는 한국인 이웃이 없어서 고민을 했는데 각종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이 레지던시에 사는 외국인들과 많이 사귀게 됐죠.”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어 남씨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직원들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박 과장이 사는 유니트(unit)는 침실 두 개에 거실이 있는 30평형 규모. 아내인 남씨가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호텔에서나 볼 수 있는 ‘하우스 키핑 서비스’ 때문이다. 집안 청소는 물론 설거지도 해주며 잔 고장도 이 곳 직원만 부르면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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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생활을 해 본 사람은 집안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고장 등이 얼마나 신경쓰이는지 알 거예요. 일일이 수선공을 부르거나 직접 고쳐야 할 일들을 대신 해준다는 게 외국생활의 어려움을 많이 덜어주죠.”
남씨는 청소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아이와 실내놀이터로 향한다. 마침 박 과장이 잠시 집에 들러 동행했다. 실내놀이방과 수영장 등에서 다른 나라 아이들과 잠시 어울려 놀았더니 어느새 세살짜리 딸이 놀이방에 갈 시간이다. 박 과장 가족만 일반 주택에 산다면 차를 몰아 직접 데리고 왔다 갔다해야 하지만 이 곳에선 셔틀버스에만 타면 끝이다. 남씨가 딸과 동행하기 어려울 때는 셔틀버스 운전사가 책임지고 놀이방까지 데려다주고 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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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과장은 “외국에 나와서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이 가족들의 ‘안전’문제”라며 “얼마 전 밤중에 옆집 아이가 몹시 아팠는데 이곳에서 직접 병원 응급실에 연결해 입원시키는 것을 보고 안심하고 맡겨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됐다”고 말했다.
물론 건물 안에서 모든 생활이 이뤄진다는 것이 갑갑하기도 하다. 또 임대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박 과장의 한달 임대 비용은 6500싱가포르달러로 한화로 470만원 정도다. 비슷한 규모의 아파트를 구하는 것과 비교하면 20∼30%가 비싸다.
하지만 이곳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은 서비스 레지던시 몇 곳과 계약을 하고 임대비용을 전액 지원하고 있다. 가족에 대한 걱정과 정착의 어려움을 덜어줘야 근무 효율이 높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박현진기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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