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이 에이이치(新井英一). 1950년 일본 후쿠오카 조선인 마을에서 태어난 재일 조선인 2세. 그가 피를 토하는 목소리로 담은 ‘청하의 길’은 차별과 멸시 속에서 자란 한 음악청년이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러 아버지의 땅을 찾아온 여정을 하나의 앨범에 담아낸 것이다. 한 재일동포 뮤지션의 오디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비범한 노래집은 총 6장 48절로 구성된 현대판 판소리와도 같다.
그의 험난한 삶의 행로를 알기 위해 또 다른 어떤 정보도 필요하지 않다. 이 앨범은 바로 아라이 자신의 삶의 궤적과 그 정체성에 대한 몸부림을, 아버지의 땅을 찾아 부산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오버랩하며 풀어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라이의 ‘청하의 길’은 산업화 과정에서 상실한 인간 본연의 가치를 고향으로 대입시켰던 곽성삼의 ‘길’에 나타난 귀향의 정서와는 또 다른 곡절을 갖는다.
이 이방인 아닌 이방인의 내면을 지배하는 선율은 다름 아닌 ‘아리랑’이다. 8절로 이루어진 각 장은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나는 간다”는 후렴구로 마무리한다.
‘청하의 길’은 1995년 일본어로 녹음해 제37회 음악음반대상을 수상하면서 일본 대중음악계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99년 한국어로 다시 녹음되었다. 오랜 시간을 통해 퇴적된 그의 신산(辛酸)한 보컬과 거칠고 투박하게 긁어대는 통기타의 투쟁적인 하모니는 말쑥하고 세련된 소리 공장의 음향에 길들여진 우리의 청각을 단숨에 일으켜 깨운다.
그의 음악은 바로 그의 삶이다. 이 앨범의 5장 ‘미국’편에서 그는 읊조리듯 모멸의 땅으로 떠난다. 편도 티켓만 들고 무작정 도미(渡美)의 길을 택한 그는 생경한 그 땅에서 “너는 누구냐?”는 질문에 “코리언 재패니스”라고 처음으로 말했다. 그의 음악적 바탕에 한국의 민요와 흑인의 컨트리 블루스, 그리고 모던 포크의 자양분이 단단하게 결합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한반도 밖에서 한반도의 정체성을 피 흘리며 추구해 온 한 명의 소중한 뮤지션을 알게 된 것을 정말이지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4월 말 그의 노래를 무대에서 만나고 싶다.
강헌 대중음악평론가 authodox@orgio.net
# 아라이 에이이치
1950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86년 처음 아버지의 고향 경북 포항을 찾은 뒤 ‘청하의 길’을 작곡했다. 그 후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노무라 스스무가 쓴 ‘일본, 일본인이 두려워하는 조센징 이야기’에도 아라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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