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읽는 책]'그리스인 조르바' ' 좀머씨 이야기'

  • 입력 2002년 4월 12일 17시 21분


□그리스인 조르바 □좀머 씨 이야기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그리스인 교수님과의 수업은 정말 별로였다. 당신이 전에 계시던 ‘몬태나주의 하늘’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 외에는 다 그랬다. 첫째, 이름이 복잡하여 과제물 앞장을 쓸 때마다 귀찮았다. 둘째, 영어발음이 정말 알아듣기 힘들었다. 셋째, 너무나 고지식하셔서 수업시간이 늘 답답했다. 처음 만난 그리스인에 대한 인상이 그랬다.

런던의 어느 골목에서 들렸던 그리스 식당은 더 안 좋았다. 아마 사촌들이 모여 장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비슷한 또래의 청년 서넛이 한켠에 양복을 빼입고 어깨인 양 서있는 모습부터 그랬다. 어렵게 주문한 음식은 그냥그냥 덥혀 나온 것이었다. 부분부분 차갑거나 미지근했고 맛도 형편없었다. 더더욱 기분상하는 것은 계산서였다. 사람을 어떻게 봤는지 합계를 부풀려 놓았다. 셈을 새로 해 계산하고 시비가 안 붙을 정도로 쌀쌀하게 문을 나왔다. 그러자 어깨들이 따라나와 일렬로 서서 뒤통수에 대고 뭐라뭐라 소리를 질렀다. 기분 나쁘고 겁나고 정말 그리스인들은 다 이런가 생각을 했다. 두 번째 만났던 그리스인들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리스인 조르바’(열린책들)를 통해 세 번째 만난 그리스인은 참 괜찮은 것 같다. 무학의 원시인, 이름은 조르바. 배움이 없다고는 하나 갖은 경험을 쌓은 그의 ‘단칼 자르기’식 이야기에 감동, 찬탄 그리고 웃음과 함께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때론 동화 속의 시뻘건 악마 같은 그가 샌님 얼굴의 두목에게 침 튀며 퍼붓는 대사는 얼마나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지.

“어정쩡하다 보면 아무 짓도 못하지요.” 그의 말처럼 그의 생각과 행동은 모든 것이 분명하다. 술과 음식, 여자 그리고 세상과 인생에 대한 확실한 그만의 해석은 정말 그를 조르바답게 해준다. 여든 살 할머니를 단 한마디로 저 세상에 보내드리고 저주까지 받은 조르바. 그의 여자에 대한 거침없는 판정은 그야말로 탁월하다. 몸 속에서 빵이 철학으로 변하고 포도주가 예술로 바뀌는 것에 대한 그의 색다른 통찰도 놀라울 뿐이다. 그러면서도 그가 평생 풀지 못한 의문, 서글픔, 쓸쓸함은 얼마나 무거운가.

그런 조르바가 이 사람을 만났으면 가만두지 않았을 것 같다. 조르바를 읽으며‘좀머씨 이야기’(열린책들)도 틈틈이 꺼내 읽게 된 것은 왜 일까? 탁- 탁- 탁-. 지팡이 소리와 함께 온 마을과 숲 속 그리고 커다란 호수 주변에 죽도록 발자국을 찍고 다녔던 좀머씨의 괴벽. 그가 정말 중요한 순간마다 소년 앞에 나타난 것은 또 무슨 우연일까? 누구나 때때로 질식할 것 같은 상태에서 뛰어 내리고 싶기도 하지만 걸으면 풀릴 것 같은, 걷는 것 외엔 답이 없을 것 같은 시간을 경험한 적은 없을까. 좀머씨의 절절한 한마디를 반복하면서.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걷는 자에게 축복이.

장 태 연 MBC TV제작2국장 mbc13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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