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야의 수집가들은 ‘수집’에 중요성을 두는 경우가 많아 수집과 보관에만 주력하는데 비해 만화 수집가들은 자신이 좋아서 수집한 만화를 수시로 꺼내 읽는다.
애독자에 가깝다는 말이다. 필자는 구하기 어려운 이두호 만화를 여러 권 가지고 있는데, 이두호 만화의 매력은 풍부한 서사가 옮겨진 만화의 화폭을 읽어 내려가는 맛이다.
우연히 구한 책도 있고, 아는 사람에게서 얻어온 책도 있지만 이들 책을 꺼내 읽을라치면 풀빛에서 출간한 ‘객주’(사진)에 대한 미련이 나를 안타깝게 했다.
서울 돈암동 어느 서점에서 10권을 온전히 판매하는 것을 확인하고 다음 번에 와서 한꺼번에 사야겠다고 다짐했건만 다시 들른 그 서점은 ‘전자오락실’로 바뀌어있었다. 불과 1주일 사이에 놓친 ‘객주’는 그 이후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이 내 책이 되지 못했다.
김주영 원작을 만화로 옮긴 ‘객주’는 조선시대 가장 활력 있고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상인들이 생생하게 살아난 작품이다.
조선시대는 남자들의 세상이었을 거라는 고정관념과 달리 여성들의 활약도 대단하다.
TV드라마나 영화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만화적 과장이 주는 개성과 전형화에 성공한 작품. 책을 펼치기만 하면 바로 조선시대의 푸성진 저잣거리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섬세하면서도 속도감 있고,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양극단을 내달리는 이두호의 선은 객주가와 여염집, 대가집과 화적이 출몰하는 고갯마루와 송파나루 등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원작에 지배되지 않고 작가 스스로 작품을 장악하고 풀어나가는 능력 또한 탁월했다. 김주영의 ‘객주’를 이두호식으로 해석한 대목들(선돌이를 살리고, 길소개를 죽이는 등)은 독자들이 환영하는 각색이었다.
몇 번씩 나에게 다가왔다가 사라진 ‘객주’가 새로운 옷을 입고 내 앞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사라질 염려가 없다.
바다출판사의 한국만화대표선 두 번째 시리즈로 출판된 이두호의 ‘객주’는 1988년에서 1993년까지 ‘매주만화’에 연재된 이후 풀빛에서 모두 10권으로 출간한 작품이다.
백성민의 ‘장길산’이 원작의 서사를 충실하게 재현했다면 ‘객주’는 원작과 충돌 없이 만화화시킨 작품이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힌다.
이번에 재간된 ‘객주’는 한국만화책 중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다. 단단한 하드보드양장에 단아한 표지 디자인은 책을 소유하고 싶게 만든다.
나는 이 책으로 하드보드양장으로 된 우리나라 만화책을 가져보고 싶다는 소망을 풀었다.
그릇과 내용물이 조화를 이루어 잘 차려진 단아한 한정식과 같은 만화 ‘객주’. 만화책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가장 아름다운 책을 만들어준 바다출판사와 디자이너에게 박수를 보낸다.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 교수 enterani@yahoo.co.kr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