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경성제2고보(현 경복고)를 졸업하고 일본 우에노(上野)대학에 유학해 성악과 플루트를 배운 뒤 일본 중국 등에서 활동하다 광복 직후 귀국해 1947년 ‘신라의 달밤’(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그의 인기는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검문에 걸려도 “‘신라의 달밤’ 부른 사람이오”라고 말하면 무사통과시켜 주곤 했을 정도다.
그는 핸섬한 외모와 독특한 창법으로 남인수 고복수 백년설 등과 함께 1960년대 후반까지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신라의 달밤’ 외에 ‘비 내리는 고모령’ ‘굳세어라 금순아’ ‘고향 만리’ ‘세월이 가면’ ‘서울 야곡’ ‘베사메무쵸’ 등 1000여곡의 히트곡을 남긴 ‘국민 가수’였다.
그는 특히 영어 일어 중국어 프랑스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인텔리 가수였다. 60년대 초반 서울 명동 시공관(옛 국립극장 자리)에서 프랑스 가수 이비에트 지로와 샹송 ‘낙엽’ ‘로망스’ 등을 함께 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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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던 그는 70년대 후반 귀국해 야간업소와 칠순 팔순 잔치 등에 출연하며 왕년의 인기를 반추했고 91년 가요생활 50주년 기념 앨범 ‘길’을 발표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했다. 2000년에도 악극 ‘그때 그 쇼를 아십니까’를 비롯해 KBS ‘가요무대’ 등에 출연하며 왕성한 활동을 벌였으나 지난해 봄 지병인 당뇨로 활동을 중단했다.
99년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화관 문화훈장을 받았으며 이듬해 8월 경주 불국사 앞에 그의 대표곡인 ‘신라의 달밤’ 노래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14일 오후 ‘굳세어라 금순아’가 흐르고 있는 그의 빈소에는 신 카나리아, 자니 리 등 선후배 원로 가수와 정원식 전 국무총리, 코미디언 구봉서, 영화배우 이덕화씨 등 각계 인사들이 줄이어 찾아와 그의 노래와 인생에 대한 얘기로 꽃을 피웠다.
고인과 호형호제하며 지냈던 ‘청실홍실’의 원로 가수 안다성씨(73)는 “한세기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호탕하고 멋진 분이었다”며 “4년 전부터 당뇨 후유증으로 고생하면서도 후배들을 따뜻하게 감싸주곤 했다”고 말했다.
원로 악극 연출자인 박호씨(82)는 “정이 많고 생활인으로서도 모범생이었다”며 “1965년에 내가 만든 악극 ‘춘향전’에 이 도령을 현인 선생이, 춘향을 백설희 선생이 맡아 노래와 연기를 했던 기억이 새롭다”고 회상했다.
유족은 부인 김미정씨(72)와 1남 3녀. 16일 오전 9시 발인해 경기 성남시 삼성공원묘지에서 영면하게 된다. 02-3010-2270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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