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쪽의 끝, 해운대가 ‘부산의 강남(江南)’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장산(장山) 밑 공터였던 좌동(佐洞)은 ‘해운대 교육특구’로 떠올라 사교육, 공교육 인프라가 확충되면서 서울 대치동을 연상케 한다.
10만여명이 살지만 단란주점 유흥주점이 7개에 불과해 러브호텔 등의 난립으로 몸살을 앓았던 수도권 신도시들과 차별화된다.
‘전통의 관광지’였던 우동(佑洞)에는 명품관과 패밀리 레스토랑이 속속 들어서고 복합상영관과 해상관광호텔도 들어설 예정이어서
서울 압구정동처럼 소비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규모 카페촌이 형성된 중동(中洞) 달맞이고개 일대는 서울 청담동에 비견된다.
한편 바닷가 대형빌라와 아파트 재건축 바람이 이 일대 부동산 가격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좌동 교준학원
‘학원’ 간판을 보기 전까지는 학원인 줄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베이지색 벽재, 은은한 나무색상의 바닥재, 입구부터 도열해 있는 화초와 화분, 군데군데 걸려있는 따뜻한 색상의 조명등 등. 오후 12시경까지 남아 있는 학생들에게 ‘제2의 집’ 분위기를 조성해 주기 위함이라고 학원측은 말한다.
이 학원은 초중고생에게 전과목을 지도하는 보습학원이다. 내신지도가 학교별, 개인별 ‘맞춤식’이라 신시가지 내 학교에 다니는 학생만 받는다. 반별로 8명씩 정원을 제한해 초과 인원은 받지 않고 대기 번호를 준다. 한 학부모는 “방학 때 미국에 2∼3주씩 단기연수를 보낼 때에도 일단 학원 등록은 해 놓고 보낸다. 한 번 빠지면 몇 개월 동안 순서를 기다려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문계 고교 입시가 서울보다 어려워 특히 중학생 수강생이 많다. 시험 때면 국사 지리 생물 등 암기과목 강사들이 1대1로 ‘외우는 방법’을 가르치고 ‘지난 학기에 나왔기 때문에 이번 시험에는 출제되지 않을 부분’ 역시 골라준다. 1분에 20개씩 슛을 넣어야 하는 체육과목 농구실기에 약한 학생들에게는 대학 체육과 학생들을 붙여준다. 이 학원의 중학교 상급반 학생들은 일반적인 영어참고서 대신 ‘토익’ 참고서를 들고다닌다. 두 달에 한번씩 토익에 응시해 점수 상승 폭을 체크한다.
●좌동 경남 선경아파트 116동
청사포 바다가 정면으로 내려다 보이는 곳. 날씨가 좋으면 대마도도 큼지막하게 보인다. 심양섭씨(52·대명건설 전무)와 배정애씨(47·주례중 교사) 부부는 아예 베란다에 차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해 ‘특급 테라스’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다.
배씨는 출근 전 노을 진 아침바다를 좋아한다. “갈치잡이 어선들이 수평선 끝에 노다닙니다. 처마 끝에 맺힌 물방울 같죠.” 요즘 같은 ‘봄 바다’에는 더구나 안개가 바다 위로 드리우는 때가 많아 내려다 보면 등산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때도 있다.
남편 심씨는 10여년 째 당뇨 증세를 지니고 있지만 바다를 보면 스트레스가 생길 겨를이 없다고 말한다. 배씨는 주말이면 남편과 함께 관광객들로 붐비는 해운대 바닷가 대신 옛날 어촌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근처의 송정이나 대변항으로 드라이브를 떠나기도 한다. 이 일대의 재래시장은 신선한 횟감과 멸치 미역 다시마를 싸게 살 수 있어 해운대 주부들이 즐겨 찾는다.
이 아파트의 6년 전 평당 분양가는 290만원. 그러나 지금은 ‘바다 프리미엄’이 붙어 700만원대로 올랐다. 58평형의 호가가 4억원이다. 해운대 신시가지인 좌동 일대에서는 가장 비싼 곳이다.
●우동 파라디아 명품관
명품관의 ‘센존(Saint John)’ 매장에 들른 VIP고객 최정화씨(51·부산 해운대구 중동)에게 이곳만의 ‘차별성’을 물었다. 그녀는 “서울의 명품관에 비해 보다 유유자적하며 ‘쇼핑의 맛’을 즐길 수 있고, 개인만을 위해 쇼핑스케줄과 가격상담을 해 주는 ‘퍼스널 쇼퍼’가 여러 가지를 챙겨준다. 대접받는 느낌이 난다”고 말했다. 층마다 걸려 있는 고급 샹들리에는 홍콩의 백화점과 비슷하다.
이곳은 ‘VIP 접대’에 각별하다. VIP들만을 위한 전용 라운지가 있는데, 이들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로데오거리의 대형의상실처럼 앞 뒤 전면거울이 달린 별도의 전용피팅룸에서 옷을 입어볼 수 있고 향수와 고급 화장품이 설치된 화장실도 따로 쓴다. 최씨는 쇼핑이 끝나면 명품관 4층의 옥외온천사우나나 통유리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러닝머신을 즐길 수 있는 피트니스 클럽으로 간다. 부산 서면이나 범일동 백화점에도 명품코너가 있고 로드숍이 있지만 패션 명품만 모아 놓은 곳은 ‘파라디아’가 부산에서 유일하다.
●좌동 신도중학교 멀티도서관과 예능교실
이 멀티도서관은 대학교의 영상도서관 음악감상실이나 고급 PC방, 비디오방이 합쳐진 모습이다. 9일 점심시간에 몰려든 학생들을 보자. ‘라이온 킹’이나 ‘포카혼타스’ 같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영어자막이 담긴 비디오로 감상하기도 하고 ‘초급일본어회화’ ‘영어말하기’ 등의 제목이 붙은 테이프나 CD롬을 듣거나 본다. 클래식 음악 CD를 개인용 미니컴포넌트에 넣고 ‘양질의 음질’을 감상하기도 한다.
특별활동 클래스 ‘예능교실’은 웬만한 사설교습소 수준 이상이다. 원하는 학생들은 피아노 외에도 바이올린 트럼펫 혼 플루트 등의 다양한 악기를 준비하고 방과 후 그룹지도를 해 줄 대학강사를 기다린다. “예술고교에 진학하기 위해서”가 목적인 학생들은 거의 없다. “취미 삼아” “선생님이 (하면) 좋다고 해서”라는 ‘여유로운’ 답변을 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주 1회 강습비는 1만8000원이다.
‘예능교육’의 마무리를 위해서일까. 쉬는 시간 종이 치면 각 화장실에서는 자동으로 바흐나 베토벤의 명곡이 흘러나온다. 학생들은 음악에 맞춰 ‘우아하게’ 볼 일을 마친다.
●중동 경동메르빌
좌동 신시가지에서 중동의 달맞이 고개로 넘어가는 길목에 공인중개사 사무실 10여개가 붙어 있다. 일제히 걸어놓은 현수막 또는 플래카드는 ‘경동메르빌 분양 상담문의’. 경동메르빌은 시영아파트를 헐고 재건축 중인 곳으로 12월 입주 예정이다. 부동산 중개인들은 “평형에 따라 2000만∼1억원의 프리미엄이 붙었지만 그래도 물량을 얻기 힘들다. 3순위까지 분양되곤 했던 예전 해운대의 부동산 상황과는 완전 딴판”이라고 말한다.
‘부동산 뱅크’에 따르면 2억4080만원, 3억7300만원에 분양됐던 51평형과 63평형은 각각 현재 3억4000만원, 4억5300만원까지 거래되고 있다. 좌동 신시가지와 붙어 있지만 상대적으로 달맞이 언덕쪽에 건설되기 때문에 ‘바다 조망권’이 보장된다는 것이 이유. 경동메르빌로 시작된 재건축 바람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재건축허가가 난 인근의 AID아파트 역시 15평짜리가 4500만원 하던 것이 최근 호가가 1억원까지 올랐다.
부산〓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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