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교수의 여가클리닉]의욕갖고 시작한 주말농장…

  • 입력 2002년 4월 18일 15시 18분


Q : 잠실의 이범재입니다. 시골서 자랐던 기억을 되살려 작년에 주말농장을 분양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과 지금까지 딱 한 번 가봤어요. 아이들은 처음 몇 시간 씨 뿌리는 것만 재미있어 하더니 그 다음부터는 아무런 흥미를 보이질 않네요. 아내는 공연한 짓 했다고 계속 구박입니다.

A : 주말농장에서 텃밭을 일구고 싶어하는 아빠는 무공해 채소를 스스로 가꿔 먹을 수 있다며 대한민국의 환경문제를 들먹이면서 아내를 설득합니다. 잘 안 통한다 싶으면 아이들이 자연을 몸으로 체험하며 자라야 한다는 근엄한 교육적 이유를 둘러대기도 하죠. 정작 결과는 범재씨처럼 주인 아저씨가 대신 농사지어 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주말농장을 갖고 싶어하는 아빠의 욕심은 간단합니다. 가족들에게 아빠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고 싶기 때문이죠. 직장 일 외에는 별로 관심 없는 아빠는 어쩌다 해야 하는 주말의 집안일이 그다지 내키질 않습니다. 아내에게 그렇게밖에 못하느냐는 눈총을 받기 때문이죠. 차라리 어설픈 밭일 하면서 환경문제나 아이들의 교육문제를 논하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어릴 적 시골이야기로 자신을 폼 나게 그려낼 수 있으리란 환상도 한몫 하죠. 하지만 범재씨 경우처럼 초라한 결말로 이어진다면 아빠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집니다. 결국 사소한 일에 남편 무시한다고 공연히 화나 내게 되죠.

범재씨, 농사를 짓겠다는 무모한 계획보다는 집 베란다를 작은 화원으로 가꿔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실 우리 아파트의 베란다는 서양의 발코니와는 사뭇 다릅니다. 빨래 말리는 곳, 쓰레기 분리수거를 준비하는 곳, 아빠의 흡연실 등등.

실용적이긴 하지만 그다지 격조가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이 기회에 겨울에 버리기 귀찮아 모아 두었던 온갖 잡동사니들을 대청소하고 아담하고 예쁜 화분들로 채우는 겁니다. 주말농장 텃밭 일구는 노력의 반만 들여도 아내에게 사랑 받을 겁니다. 또 베란다 난간에 거는 화분에 봄날에 어울리는 빨간 꽃, 노란 꽃을 심는 겁니다.

유럽의 봄은 집의 창문에서부터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창마다 색색의 꽃을 걸어놓기 때문이죠. 제가 아직 총각으로 독일에서 유학하던 때입니다. 빨간 꽃이 걸려 있는 창문 너머로 젊은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과자를 구우며 주말의 오후를 보내는 모습을 보고는 며칠을 끙끙 앓았습니다. 빨간 꽃 너머의 그 가족의 행복과 내 외로움 사이의 거리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지금도 시멘트 벽이 높은 서울의 아파트지만 베란다에 꽃이 걸려 있는 집은 무척 행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범재씨 가족은 행복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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