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최석진은 일본 아니메에 투영된 일본의 현대사를 꿰뚫어보고 ‘여기에선 저 일본이 신기루처럼 보인다’(써드아이 펴냄)고 썼다. 여기서 ‘신기루’란 일본 사회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단편적으로 한 작품의 내용과 기법만 분석해 온 그간의 무지와 오류를 지적한 것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정확히 말하면 유령)의 독백 “1945년 9월21일 밤 나는 죽었다”로 시작하는 ‘반딧불의 묘’(원작 노사카 아키유키)는 흔히 반전영화로 알려져 있지만, 저자는 오히려 자신들이 희생자임을 앞세워 가해자로서의 책임을 얼버무린 일본인들의 역사의식을 문제 삼는다. 패전 후 일본의 모습은 또 다른 애니메이션 ‘인랑’(원작 오시이 마모루)으로 이어지며, 일본의 미래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예견돼 있다. 저자가 ‘여기에선 저 일본이 신기루처럼 보인다’를 통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애니메이션이라는 가상현실에서 일본의 실체가 더 분명히 보인다는 역설일 것이다.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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