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스테디셀러]삶의 향기-추억을 읽는다 '인연'

  • 입력 2002년 4월 19일 17시 23분


◇ 인연/피천득 지음/306쪽 7000원 샘터사

처음에는 ‘스위트피’처럼 귀여웠고 두 번째는 ‘목련꽃’처럼 청순하고 세련됐던 일본 여인 아사꼬(朝子). 그러나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세 번째 만남에서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라며 시시각각 변해가는 인연의 멀어짐을 이야기했던 수필 ‘인연(因緣)’. 수필가이자 영문학자인 금아 피천득(琴兒 皮千得·92)선생의 이 짧은 글은 학창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읽은 글 중 가장 마음에 남았던 작품 중 하나다.

1996년 5월 출간된 금아 선생의 수필집 ‘인연’은 ‘산호와 진주’ ‘금아문선’에 수록된 수필과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수필 몇편을 추가한 작품집. 지금까지 60쇄를 찍었고 35만부가 넘게 나갔다. 요즘도 한달 평균 5000부가 넘는 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꾸준한 반응을 얻고 있다.

그의 글이 오랜 생명력을 갖는 까닭은 소박한 언어로 담아낸 섬세한 일상의 풍경에 있다. 다감한 문체가 쉽게 읽히면서도 긴 여운을 남긴다. 여유를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안식의 시간’을 건넨다고나 할까.

그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있는 마음의 산책이 ‘수필’이며, 청춘을 잃었어도 순간순간 가까워오는 ‘봄’을 느끼는 것이 축복임을 나지막히 읊조린다.

이 책 말미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살아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해 본다. 그리고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

언젠가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아사꼬를 다시 한번 만나보시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해왔으나 선생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다”며 사양하셨다는 후문이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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