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하의 만화세상]읽을 때마다 느낌다른 '해와 달'

  • 입력 2002년 4월 21일 17시 37분


초판본, 재판본, 복간본 등 만화의 여러 판본을 보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편집의 변화와 인쇄의 차이, 하다 못해 새롭게 추가된 ‘작가의 말’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만화 콘텐츠의 부재는 2000년대 들어 만화 복간을 끌어냈고, 2001년 11월 권가야의‘해와 달’도 그 혜택을 입었다. 90년대 후반‘아르미안의 네 딸들’,‘불의 검’,‘바람의 나라’와 같은 순정만화의 복간은 계속되었으나 소년만화의 복간은 드문 일이었다.‘해와 달’은 명랑만화나 고우영, 박수동, 강철수의 만화처럼 70년대를 추억하게 하는 만화도 아니었으니 출판사를 옮겨 새로운 장정으로 발간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이 만화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 권가야 연출력 탁월▼

‘해와 달’은 한국만화의 충격적 데뷔작 리스트의 가장 첫머리에 오를만한 작품이다.‘아이큐점프’에 연재된 이 만화를 처음 본 독자들 중 일부는 낯선 작가가 보여준 탁월한 드로잉과 연출에 경악했고 작품의 전도사가 되었다.‘아이큐점프’의 타겟이었던 어린 독자들에게 이 만화는 너무 어려웠고 무거웠다. 이를테면, 백일홍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낭랑이 죽은 자리에서 그대로 60일 동안이나 꼼짝 않고 함께 죽어가는 장면, 이런 장면을 이해하기에‘아이큐점프’의 독자들은 너무 어렸다.

연재 중반쯤 새로운 독자들에게 발견된‘해와 달’은 열정적인 환호를 받았다. 만화평론가 김이랑이‘해와 달’ 복간본에 쓴 글에서처럼 그 명성이 소문으로 자자했다. 화려한 동세가 가득한 칸과 모든 것이 멈추어져있는 것 같은 칸. 우리는 이러한 상반된 연출의 대비를 통해 시공을 제어하는 고수들의 무공을 눈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 초절정 고수들의 무공은 화려했고, 과장된 캐릭터가 뿜어내는 아우라도 출중했다. 한참 이야기가 타오르던 중‘해와 달’은 단행본 5권(복간본은 3권)으로 마무리되었다.

▼끝부분 너무 압축 아쉬워▼

‘해와 달’을 장르만화로 읽을 경우 무차별 다이제스트의 엔딩은 독자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무협만화의 호흡으로는, 아니‘해와 달’이 앞의 이야기에 투자한 호흡으로라도 10권 이상은 족히 진행되어야할 이야기들이 단 2페이지로 끝나버린다. 작품을 판단하는 상투적인 방법 중 하나인 별점의 표현을 빌어오면, 작품 전체는 별 다섯 개, 엔딩은 별 한 개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가는‘해와 달’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마쳤기 때문에 작품을 끝낸 것이다. 비밀은 작품 진행에 끼어 들어 서사의 흐름을 단절시킨 선문답과 같은 내레이션에 있다. 작가는 연재된 잡지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 작품의 운명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언제라도 서사를 접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권가야는 여러 이야기들을 겹치기로 집어넣으며 산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비친 선문답은 독자들의 마음으로 해석되어야한다. 처음 읽을 때와 두 번째 읽을 때, 그리고 다시 읽고 또 다시 읽을 때마다‘해와 달’은 내 마음에 다른 무늬를 새겨 넣는다. 이번에는 백비와 아들 백일홍이 여인에게 보인 사랑의 무게를 읽는다. 복간본은 장정도 커지고 종이도 좋아졌다. 조금은 아쉽지만 수집목록 3호다.

박인하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 교수〉 enterani@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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