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가엾은 여우들 내가 구해줄거야 '검은 여우'

  • 입력 2002년 4월 23일 15시 30분


◇ 검은 여우/ 베치 바이어스 글 김우선 그림/ 171쪽 6500원 사계절(초등 3학년이상)

부모의 보호 아래서 자라는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 이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어떤 계기가 주어진다면 앞뒤 재보고 계산하는 어른들과는 달리 특유의 순수함으로 그 삶에 적극 개입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역시 아이들이다. 이 책의 주인공 톰이 심약한 성격을 이겨내고 검은 여우를 지켜낸 것처럼….

톰은 도시 아이다. 신제품 조립 장난감만 있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심심하지 않다. 톰은 친구 피티와 장난할 때만 빼면 상상을 즐기고 책을 좋아한다. 당연히 활동이 많은 체육시간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톰은 또한 익숙한 것이 아니면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소심한 아이다.

그런 톰에게 두 달간의 여름 방학을 이모네 농장에서 보내야 하는 현실은 막막하기만 하다. 부모님의 유럽여행을 망치고 싶지는 않지만, 낯선 곳에서의 생활은 생각만 해도 따분하고 지루할 것 같다.

농장에 와서 처음 며칠은 우편물을 가지러 갈 때 외에는 아무런 설렘도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그 ‘멋진 광경’을 본 이후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고양이보다 빠르고 가벼운 발걸음, 우아한 몸놀림, 게다가 동물원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검은 색이라니…. 바로 ‘검은 여우’의 모습이다.

검은 여우를 보고 난 이후의 톰은 피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조차 여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생각지 못한 행운을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말해 버리면 그것이 금방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러나 타는 듯한 더위와 더불어 인물들의 긴장도 최고조에 다다른 때 검은 여우가 농장에 남긴 사냥의 흔적은 비극이 시작됨을 알린다.

검은 여우와 그 새끼를 지켜 줄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걸 깨달았음에도 여우 사냥을 따라 나설 수밖에 없었던 톰은 결국 여우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던 용기를 발견하게 된다.

뜨거운 열기를 식혀 줄 폭우가 내리는 밤 톰은 태어나 처음으로 창문을 넘어 나무를 타고 내려가 마침내 검은 여우를 잡기 위한 미끼였던 새끼 여우를 풀어 준 것이다. 여우를 사랑한 만큼 어느새 훌쩍 자라 버린 톰. 집으로 돌아와 자기 방에 들어선 톰은 방안에 가득한 플라스틱 조립 장난감이 낯설기만 하다.

베치 바이어스의 1968년 발표작인 이 책의 주인공들은 행동이나 말투에서 느낄 수 있는 그대로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인물들이다.

또한 익살스럽고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는 마치 영상을 보듯 어린이들로 하여금 쉽게 책 속으로 빨려들게 할 것이다.

오 혜 경 주부·서울 강북구 미아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