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색 하나에 담은 우주의 철학…모노크롬 전시회 잇달아

  • 입력 2002년 4월 23일 17시 49분


삼베 위에 밤색 남색을 칠한 윤형근의 모노크롬 '번트 앰버(Burnt Umber)'. 2001년작.
삼베 위에 밤색 남색을 칠한 윤형근의 모노크롬 '번트 앰버(Burnt Umber)'. 2001년작.
1970년대 한국 미술계를 풍미하면서 한국 추상미술의 대표적 흐름으로 자리잡아온 모노크롬(단색 미술). 박서보 이우환 정창섭 윤형근 김기린 서승원 등 모노크롬을 이끈 주역들의 면면에서도 잘 드러나듯 한국 현대 미술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린 사조로 평가받고 있다.

처음 보면 다소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보고 또 보면 편안해지고 나아가 깊은 사색으로 이끄는 모노크롬. 최근 단색의 인테리어를 선호하는 경향과 어울려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평생을 색 하나와 맞서 싸워온 치열한 예술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모노크롬의 매력이다.

최근 모노크롬 선구자들의 전시가 줄을 잇고 있다. 얼마전 박서보가 서울 갤러리현대와 박여숙화랑에서, 서승원이 서울 노화랑에서 전시를 마쳤고 현재 윤형근 김기린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윤형근 개인전은 5월3일까지 서울 종로구 팔판동 갤러리 인, 김기린 개인전은 5월11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카이스 갤러리, 그리고 박서보 개인전이 5월말 서울 갤러리세줄에서 다시 이어진다.

윤형근은 삼베 위에 남색과 밤색을 뎅그러니 그려넣은 대작을 선보인다. 그의 모노크롬은 정적이고 무심하다. 그러나 그 무심함을 응시하다보면 무언가 울렁거림이 느껴지고 급기야는 삼베가 출렁이면서 보는 이의 내면을 흔들어놓을 것 같다. 무심하고 단순한 덩어리 색 하나가 사람의 정신을 건드린다.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 등의 단색을 화면 가득 채운 김기린의 모노크롬 작품 'Inside, Outside'. 2002년작.

김기린은 붉은색 노란색 등 한작품에 한가지 색을 사용한다. 화면 자체가 하나의 색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색을 칠한 화면이기도 하고 동시에 색을 칠하지 않은 여백이기도 하다. 김기린의 모노크롬을 잘 들여다보면 색이 무수히 덧칠돼있다. 그 오랜 덧칠의 과정은 시간의 흔적이다. 그의 단색은 단순하지 않다. 오랜 시간과 함께 완성된 것, 그래서 서서히 생명감을 전해주는 단색이다.

모노크롬은 단순히 한가지 색을 칠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단색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간 정신의 문제까지 파고든 것이다. 모노크롬 작품 대부분이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절제의 미학이 가져다주는 정신의 심오함이다. 20세기초에 서양화 기법을 받아들인 뒤 어설픈 모방의 수준이 이어져온 상황에서 1970년대 모노크롬의 출현은 한국 현대미술의 일대 도약이었다. 모노크롬이 한국 현대미술의 참다운 시발로 평가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갤러리 인 02-732-4677, 카이스갤러리 02-511-0668.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