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톨릭교회에서만 사용되던 고백성사란 용어는 지금은 속세로 나와 거의 일반용어가 됐다. 누구든 자신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빈다며 고백성사란 말을 어렵지 않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고백성사란 용어의 성스러움이 손상되어 가는 측면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지난달에는 민주당의 김근태 상임고문이 자신의 불법 정치자금 명세를 공개하면서 ‘고백성사하는 마음’이라고 표현했다가 온갖 정치적 파문에 휩쓸리고 말았다. 우리 정치판에서 정치자금 문제는 그만큼 풀기 어려운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임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다.
▷이번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차기정부 정책과제’란 보고서를 통해 정치지도자들이 불법정치자금에 대해 고백성사를 하고 이에 대해 사면해주는 특별법을 제정하자고 제안했다. 실제로 불법 정치자금에서 자유로운 정치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돈을 써야만 행세를 하고 다음 선거에서도 이길 수 있는 우리의 고비용 정치구조에서 정치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검은 돈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정치자금 비리의 악순환을 끊고 깨끗한 정치로 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씻어주는 ‘고백성사 의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전경련의 이 같은 제안 뒤에는 정치자금 문제와 관련해 재계는 잘못이 거의 없다는 인식이 숨어있는 것만 같다. 언젠가 한 기업인이 검찰에서 정치자금 조사를 받으면서 “불량학생이 지나가는 학생에게서 돈을 빼앗아갔다. 그것이 과연 돈을 빼앗긴 학생의 잘못이냐”고 항의했다던 얘기가 떠오른다. 하지만 재계가 정치인에게 적극적으로 정치자금을 주고 그만큼 특혜와 잇속을 챙겨왔던 오랜 정경유착 구조를 마냥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경제인들도 돈을 준 정치인과 그 명세에 대해 고백성사하는 것이 공평하지 않을까.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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