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종교사회학자 정재식 美보스턴大 석좌교수에 듣는다

  • 입력 2002년 4월 23일 18시 26분


《종교사회학 및 비교종교윤리 분야의 세계적인 학자인 정재식(鄭載植·72) 미국 보스턴대 월터 G 뮐더 석좌교수(사회윤리)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사무총장 김여수)의 ‘21세기 인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공동가치 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내한했다. 21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정 교수를 만나 9·11테러 후 미국인들의 의식 변화, ‘공동가치’의 가능성 등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정 교수는 이번 포럼에서 ‘세계화의 윤리적 문제와 전망’을 주제로 발표한다.》

-선생님께서는 종교의 문제를 핵심에 놓고 사회의 문제를 다루시며 공동가치를 추구해 오셨는데 최근 이슬람과 서구의 갈등을 보면 국제관계에서 가장 심각한 갈등 원인은 바로 종교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명한 신학자인 폴 틸리히가 말했듯이 ‘종교는 문화의 실체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입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문화의 핵심을 보면 바로 종교가 있다는 것이지요. 요즘 상황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문명간 갈등은 곧 종교 갈등입니다. 종교는 사회구성원의 결속을 강화하는 반면 ‘우리’와 ‘타자’, ‘안’과 ‘밖’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로 분열을 조장하는 기능을 해 왔지요.

그런데 이는 수렵사회나 농업사회에서 비롯된 사고방식입니다. 이제는 모빌리티(Mobility·유동성)의 사회예요. 경계가 무너지는 잡종과 다양성의 사회라는 것이죠. 종교도 이런 세상의 변화에 따라 타종교나 타문명과의 대화를 하는 방향으로 체질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이럴 때 보편윤리 또는 공동가치가 가능해지는 것이지요.”

-미국의 상황은 어떤가요? 다종교 다문화 사회로 세계화를 주장하며 공동가치를 추구해야 할 미국이 도리어 가장 배타적이고 국가주의적으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종교간의 불화와 갈등은 종종 테러와 같은 불행을 초래한다. 사진은 9·11 뉴욕 테러 현장.

“그건 지금 미국의 정권을 쥐고 있는 보수세력들의 모습일 뿐입니다. 물론 미국인은 단순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먼로주의(고립주의 또는 불간섭주의)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9·11사건을 계기로 미국에 놀랄 만한 의식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어요. 교회를 비롯한 각 공동체의 지도자나 지식인들은 이슬람인들이 왜 저토록 자신들을 미워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제가 1957년 미국에 유학간 이후 한국을 오가며 45년을 보냈지만 미국인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며 반성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신문방송을 통해 전해지는 것은 미국의 비타협적 전쟁이나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지난 동계 올림픽에서의 편파 판정 등 미국인들이 배타적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사는 곳은 보스턴 교외의 셔본이라는 인구 4000명 정도의 마을인데, 9·11사건 이후 그곳에서는 이슬람지도자, 가톨릭 신부, 개신교 목사, 평화운동가 등이 모여서 마을사람들과 함께 ‘평화를 모색하는 모임’을 마련했어요. 이들은 각자가 자기 입장에서 테러를 이해하고 그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지요. 그토록 개인주의적이고 향락주의적인 미국 사회에서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것을 미국인들의 근본적인 변화로 볼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입니다.

“미국 보수세력의 정책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늘어나고 있어요. 하지만 물론 이런 의식변화가 있다 해도 자신들의 문화적 배경을 초월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은 서구적 아집과 우월감을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이해하려는 것이지요. 이런 아집을 깨는 것은 비서구 출신의 학자예요. 한국학자를 비롯한 비서구출신 학자가 세계에 많이 진출해서 자기 문화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 관점을 반영하는 연구성과를 많이 발표하고 토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그야말로 공동가치가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공동가치 포럼’은 26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다. 정 교수는 1일 오후 5시 연세대 인문과학연구소에서 강연을 갖은 후 5월 10일 경 출국한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 정재식은 누구

△1955년 감리교신학대 졸업

△1957년 연세대 석사

△1964년 미국 보스턴대 박사

△1980∼90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1990∼현재 미국 보스턴대 월터 G 뮐 더 석좌교수

△주요논저: ‘프로테스탄티즘과 근대 한국의 형성’, ‘종교와 문화정체성’, ‘유교 윤리와 사회변혁’, ‘세계적 언 어로서의 인도주의’, ‘한국, 종교적 전통, 그리고 세계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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