踏-밟을 답 靑-푸를 청 閑-한가할 한 遊-노닐 유 觴-술잔 상 煎-지질 전
우리나라의 겨울은 춥고 길다. 특히 밤이 그렇다. 그래서 잠 없는 노인들에게는 拷問(고문)과도 같다. 젊은이들에게도 겨울은 그리 반갑지 않다. 추위에 잔뜩 웅크린 데다 놀이가 많지 않았던 옛날, 農閑期(농한기)가 겹친 ‘동지섣달 기나긴 밤’은 그저 따분하기만 할 뿐이다.
자연히 새해가 되면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男女老少(남녀노소)가 같았다. 여기에다 들판이 파릇하게 물들고 野山(야산) 여기저기 진달래가 붉은 색을 演出(연출)할 때쯤이면 제 아무리 들어앉은 샌님일지라도 방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踏靑’은 ‘푸른 풀을 밟는다’는 뜻으로 봄나들이다. 일명 春遊(춘유)라고도 했으니 ‘봄 놀이’라고 해도 되겠다. 중국에서는 3세기인 魏晉(위진)시대부터 매년 음력 3월 3일을 上巳節(상사절)이라 하여 풍경이 수려한 곳이나 강, 또는 계곡을 찾아 즐기곤 했다. 특히 계곡일 경우, 流觴曲水(유상곡수·잔을 물굽이 따라 띄워놓고 시를 지으면서 마시는 놀이)가 따랐다. 그러던 것이 唐(당)나라를 거쳐 宋代에 오면 빠뜨릴 수 없는 歲時風俗(세시풍속)이 되어 전국적으로 행해졌다.
그렇다고 踏靑이 3월 3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따뜻한 봄날, 봄을 느끼기 위해 郊外를 찾는 것이면 모두 踏靑에 해당되는 것이니 지금말로 하면 넓은 의미의 賞春(상춘)이 踏靑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宋의 대표적 풍속화가인 張擇端(장택단)의 ‘淸明上河圖’(청명상하도)는 淸明의 踏靑을 주제로 그린 그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踏靑은 성행했다. 고려시대부터 중국의 법을 본받아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을 令節(영절)로 정하고 하루를 즐기도록 했다. 그 중 3월 3일에는 踏靑이라 하여 산과 들에 나가 꽃놀이를 하고 봄 풀을 밟으며 즐기도록 했고, 9월 9일은 산에 올랐는데 이를 登高(등고)라고 하였다. 조선후기의 풍속화가 蕙園(혜원) 申潤福(신윤복·1758-?)의 ‘年少踏靑’(연소답청)은 閑良(한량)과 妓生(기생)들의 봄맞이 행렬을 그린 그림이다.
또 이 날에 흰나비를 보면 상을 당하게 되며 노랑나비나 호랑나비를 보면 그 해 운수가 좋다는 俗說도 전해온다. 다양한 민속놀이도 행해졌는데 부녀자들은 야외에서 진달래꽃을 찹쌀가루에 반죽하여 花煎(화전)을 지져먹는가 하면 쑥을 뜯어 쑥떡을 해 먹기도 했다. 어떤 이는 산소를 찾아 省墓(성묘)를 하기도 했다. 봄에 볼 수 있었던 풍경들이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