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과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음에도 누구나 다 자신만은 예외라고 생각한다. 마음만 잘 다스리면 그리고 몸 관리만 철저히하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만은 언제까지나 젊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나이는 들어가지만 늙지는 않는다며 기를 쓰고 늙음을 밀어낸다. 지금 같은 세상에 늙음을 받아 들이는 건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므로.
하지만 늙음은 젊음이 스타카토로 끝나는 날 갑자기 찾아 오는 손님이 아니다. 나이듦과 더불어 늙음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노전생활이란 말이 없으니 노후생활이 따로 있는 게 아니잖는가.
마치 강철여인이라도 되는 듯 나이듦을 잊고 살았던 나는 미련하게도 이런 당연한 사실을 몸으로 부딪쳐 보고서야 겨우 알았다. 그리곤 마치 혼자 큰 깨우침을 얻기라도 했다는 듯 글로 풀어내더니 책으로까지 묶어냈다. 그저 그렇게 살아온 50대 여성이 나이듦을 제 몸속에 받아들이면서 느낀 그저 그런 생각들을 시시콜콜히 다 끌어내 펼쳐 놓다니 보통 배짱이 아니다 싶기도 한데, 그 또한 나이듦의 한 면모인 걸 어떡하랴.
그런데 애초에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시작한 이 책을 읽고 뜻밖에도 엄청난(?)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다며 정답게 다가와 깜짝 놀랐다. 아니 지금도 날마다 놀라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 생각이란 정말 거기서 거기까지인가 보다.
‘책을 보고 울고 웃었다’는 말을 듣고 다시 책을 샅샅이 훑어 봤지만 도무지 어디서 울고 웃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어 궁금증이 난다. 그런가 하면 내 친구의 70대 이모님은 ‘아니, 걔는 어떻게 내 생각을 그렇게 꼭 집어낼 수가 있느냐?’며 감탄하시더란다.
집에선 아웅다웅하다가도 길만 떠나면 환상적인 친구사이로 돌아가는 부부관계가 자기네와 너무 똑같아서 남편에게 읽어 주면서 함께 웃었다는 60대 주부, 나이 들어가면서 자꾸 쫀쫀해져가는 아버지가 안쓰럽다는 30대 기자도 만났다.
흥미롭게도 1월 1일 책을 사서 읽었다는 젊은 주부들이 꽤 많았는데 그 중 어떤 여성은 어렵게 전화를 걸어와 다정한 목소리로 고맙다는 인사를 해와 나를 쩔쩔매게 만들었다.
그런데 한 50대 남성이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과제를 줬다. 남성들을 위한 ‘나이듦에 대하여’를 써달라고. 내겐 미션 임퍼시블.
박혜란 여성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