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인자 성인이에요. 암만해도 분위기가 좋아지겄지요….”
“…지금은 이발소가 여자 장사를 해.”
“그럼 이발은요?”
“하긴 하는데 이발하러 왔다 그러면 짜증나지.”
3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이발사 박봉구’의 연습현장을 찾았다. 연극배우들이 구석구석에 포진해 대본 연습에 여념이 없다. 거울을 보며 표정 연기를 반복하거나 상대 배우끼리 입을 맞춰본다.
연출자를 비롯 의상 음향 조명 담당 등 10여명이 배우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는 모습은 사뭇 진지하다.
이발 의자와 소주병, 구두닦이 통, 각종 의상 등 연극 소품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배우들은 ‘실전 치르듯’ 진지하게 대사를 주고 받으며 간이 침대에서 안마를 받고 술을 마시고 구두를 손질한다.
연출진은 연기가 미흡한 배우에게 불호령을 내리면서도 대사를 까먹어 애드리브를 치는 순간에는 웃음바다를 이루기도 한다.
|
주인공 박봉구 역을 맡은 정은표는 90년 ‘연봉 100만 원 짜리’ 극단 ‘목화’ 단원으로 출발해 ‘백마강 달밤에’로 95년 백상 예술상을 수상한 개성파 배우. 영화 ‘유령’ ‘행복한 장의사’와 KBS 일일극 ‘우리가 남인가요’ 등에 출연하며 ‘비중있는 조연’으로 부각된 상황에서 1년여만에 연극판에 다시 돌아온 소감이 궁금했다.
“늘 저는 여기(연극판)에 있었는걸요. 제 꿈은 연극배우잖아요.”
박봉구는 한순간의 실수로 선생을 살해한 죄로 감옥살이를 한 시골 청년. 이발사인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머리터럭(머리털) 손질하는 것”을 천직으로 생각한다. 이발소에 취직하지만 그가 재능을 발휘할 기회는 없다. 개업한 모범 이발소가 실패하자 그 역시 퇴폐 이발소를 선택한다. 대기업 회장의 전용 이발사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오지만 그나마 스타일리스트에게 빼앗긴다. 봉구는 세상을 향해 면도날을 휘두르며 동면(冬眠)에 들어간다.
담당 연출자 최우진씨는 편리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잃어가는 과거의 것을 되돌아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발소가 언젠가부터 퇴폐의 상징처럼 돼버렸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순수한 본질을 지키려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꼈으면 해요. 여유와 호흡을 갖는 것이 이 시대에 필요한 덕목 아닐까요.”
영화 ‘와이키키 브러더스’, 연극 ‘행복한 가족’에서 걸출한 연기력을 선보인 박원상을 비롯 오용 이승비 정진 등이 출연한다. 6월2일까지. 평일 오후 7시반 주말 오후 4시 7시반(월 공연없음). 8000∼1만5000원. 02-766-3390, 02-741-3391.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