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우린 그 명백한 사실을 자주 외면하고 싶어한다. 내가 좀 덜 줘도 상대방은 계속 날 이해해 주길 바란다. 반대로 내가 계속해서 넘치게 주면 언젠가 상대방도 그런 내 심정을 알아줄 날이 오겠지 하며 막연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기도 한다. 그 기대가 서서히 막연한 분노로 바뀌기 시작하는 것도 미처 모른 채. 그걸 깨달았을 땐 대부분 이미 그 인간관계는 무너져 있게 마련이다.
우린 의존적이란 말도 싫어한다. 물론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의존은 분명 문제가 된다. 그러나 적절한 의미의 상호의존은 인간관계에 꼭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얼마 전 네덜란드의 한 여성작가가 그것을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하고 있는 글을 읽었다.
“한 단어만으로는 아무 의미도 전달할 수 없다. 한 단어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것은 그 단어가 다른 단어들과 서로 연결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처럼 인간 역시 다른 사람과의 상호의존적인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대상이나 인간 가족 친구 연인, 그리고 세계와의 관계를 통해 의미를 획득한다. 나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인간관계는 자신의 삶을 의미있는 것으로 보느냐 혹은 무의미한 것으로 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한 여자가 아이를 낳음으로써 어머니가 되는 것처럼 인간관계라는 게 그렇다. 인간은 연인을 통해 연인이 되는 것이고 친구를 통해 친구가 되며 독자를 통해 작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의존의 드라마다. 이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남의 글을 좀 길다 싶게 인용한 건 그의 말에 나 역시 전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는 분명 상호의존적이다. 단 ‘건강한 의미에서’란 단서가 필요하겠지만. 따라서 누군가와 좋은 관계를 맺고 그걸 지속하고 싶다면 너무 기울지 않게 ‘상호이익’을 도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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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순 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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