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북스]유전자, 과거 풀고 미래 여는 열쇠

  • 입력 2002년 5월 10일 17시 22분


길어진 송곳니 때문에 멸종됐다고 알려져온 '검치호'의골격
길어진 송곳니 때문에 멸종됐다고 알려져온 '검치호'의골격
2000년 6월 26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드디어 인간 게놈 구조가 해독되었다”고 발표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위성중계를 통해 “이 성과는 과학과 인류에게 빛나는 미래를 선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야흐로 생명공학이야말로 IT(정보기술)와 더불어 21세기를 이끌어나갈 산업계의 화두임은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IT와 달리 수많은 윤리적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제는 ‘생명공학의 대중적 접근’이 보다 큰 의미를 가질 시점이다.

로저 르윈의 ‘진화의 패턴’(로저 르윈·사이언스북스)은 생물종(種)의 분류에 대해 분자생물학 차원의 최신 이론을 동원한 책. 몇 가지 전문용어만 통과하면 청소년층도 무리없이 읽을 수 있다.

분자생물학이란? 생명체를 이루는 세포는 DNA의 단백질 합성이 이루어낸 산물. 그러므로 화학적 방법을 통해 DNA 서열을 분석하면 한 종이 다른 종과 얼마나 가까운지, 두 가지 종이 다른 종으로 분화해나간 시점은 이와 비슷한 제 3의 종과 비교해 더 먼저인지 혹은 최근인지 등을 알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가 비슷한 과(科)로 묶여있었던 반면 사람은 훨씬 일찍 이 계통수의 ‘가지’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DNA 분석의 결과는 고릴라 침팬지 사람의 염색체가 유사하며, 특히 침팬지와 사람이 분리되기 시작한 것은 이전에 예측한 것 보다 훨씬 최근의 일임을 보여준다는 것.

분자생물학은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說)에도 가장 강력한 뒷받침을 해준다. 원래 인류는 그 외관상의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아종(亞種)으로 묶일 정도로 염색체의 차이가 적지만, 특히 아프리카 각 부족의 염색체 차이에 비해 아시아인과 코카서스인 전체의 염색체 차이는 실로 미미할 정도로 적다. 이는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인류의 극히 일부만이 아프리카와 유라시아를 잇는 지협(地峽)을 빠져나와 넓은 지역으로 분화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가장 최근 번역 출간된 ‘유전자의 세기는 끝났다’(이블린 폭스 켈러·지호)는 우리의 미래를 바꾸어놓을 것으로 찬사를 받고 있는 생명공학의 한계를 지적한 책으로 관심을 모은다.

인간 염색체 서열이 모두 해독되었다는 사실은 약점 있는 ‘유전자’를 보다 나은 것으로 대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나? 선천적 불구에서부터 성인병에 이르는 다양한 질병유발인자를 ‘정상적’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가까운 장래에 가능한가? 섭섭하게도 저자의 대답은 ‘노’다.

왜? 염색체는 한줄 한줄이 ‘새끼 손가락을 만들어라’ ‘간(肝) 세포를 만들어라’와 같이 직독 직해되는 ‘생명의 책’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아낸 것은 GATTAGA… 등의 기호로 표시되는 DNA의 아미노산 조합 순서에 불과하다. 의미가 없는 것으로 여겨져온 부위(인트론)도 조직 발생에 간여하며, 한 조직을 발생시키는 유전자도 여러 위치에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다. 모든 세포에 공통적인 염색체가 들어있지만, 그 세포가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염색체의 기능이 발현되는 스위치가 꺼지거나 켜진다. 그 메카니즘 역시 복잡하기 그지 없다.

그러므로 저자가 우리 앞에 제시하는 생명공학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다. ‘염색체의 언어에 따라 개체가 발생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생명체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 보다 더 복잡하고, 결국 불가능한 일일 지도 모른다.’ 어떤 질병을 없애기 위해 특정 부위의 염색체를 대체한다던가 하는 일은 결국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임의로 ‘대치된’ 유전자가 예상치 못한 다른 재앙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은 차치하고라도.

이보다 밝고 실용적이며 보다 이해하기 쉬운 생명공학 입문서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게놈이 세계를 지배한다’(나카무라 유우스케 외·아카데미북)가 실질적인 도움을 줄 만하다. 여러 생물종의 유전자 해독 프로젝트 전망과 낙관적으로 전망한 생명공학산업의 미래 등을 백과사전적으로 담았다.

유전공학과 환경의 관계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종(種)다양성에 대해 철학적 윤리학적 성찰을 담은 ‘풀하우스’(스티븐 제이 굴드·사이언스북스)가 도움을 준다. 저자는 ‘진화’라는 개념을 그릇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진화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뇌 용량이 커지거나 말의 체구가 커지는 등의 직선적인 합리화 과정이 아니며, 다양한 종이 창출되어 제각기 생존하는, 즉 모두 함께 모여 있는 것(full house)이야 말로 진화의 최종 목적이라는 것. 그러나 이 책은 ‘자연선택과 적자생존 또한 자연의 섭리라는 점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공격에 대해서는 취약하다는 약점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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