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슬 퍼런 군부정권이 들어섰던 1980년대, 어두운 골방에서 몰래 읽던 책. 대학가에서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왕따’ 취급을 받았던 책. 386세대가 잊을 수 없는 책. 바로 ‘철학 에세이’다.
1983년 초판이 나온 이 책은 어려운 인문학이라는 인식을 깨고 사회과학 분야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알기 쉬운 철학, 생활 속의 철학’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80년대 베스트셀러였던 ‘철학 에세이’는 90년대 들어 학생운동이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연 평균 1만부가 넘게 팔렸고 요즘도 한달에 약 400부의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
동녘 출판사의 한 관계자는 “발간 당시 정부의 감시가 심해 정확한 집계도 못했을 정도”라며 “하지만 대충 잡아도 지금까지 100만권은 넘게 팔렸을 정도로 꾸준한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을 쓴 조성오씨는 서울대 법대 재학 중 학생운동을 하다 제적당했다. ‘철학 에세이’가 나왔을 당시 저자 이름은 ‘편집부’였다. 저자의 이름을 밝혔을 경우 책을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 책이 나온 지 10년 뒤인 1993년에서야 그의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대학생 문희진씨(21)는 “선배의 권유로 처음 ‘철학 에세이’를 접했을 때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됐지만 반복해서 읽으면서 일상의 모든 일들이 철학의 한 부분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철학 에세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잣대로서 대중 철학을 지향한다. 난해하고 현학적인 담론보다 ‘모든 것은 변한다’ ‘한 올의 실이 천이 되기까지’라는 식으로 생활 속의 생생한 사례들을 통해 철학의 기본 개념을 풀어나간다.
그렇다면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닭이 있어야 알을 낳을 것 아니냐는 주장과 알이 부화해야 닭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주장이 엇갈릴 수 있다. 해답은? ‘철학 에세이’에 나와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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