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고르고 나서]어렵고 힘들수록 여유가 필요합니다

  • 입력 2002년 5월 17일 17시 41분


최근 출판계의 흐름을 크게 두가지로 나눈다면 하나는 영성과 관련한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재테크나 직장생활의 ‘생존’을 돕는 실용서들이 인기를 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병주고 약주는’ 또 하나의 자본의 논리(^^)로 나름대로 정의내리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출판계의 흐름이야말로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관심분야를 집약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최근 한달사이 나온 책들을 훑어 보면서, 이제 우리의 사유(思惟)도 보다 깊어지고 있지 않는가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습니다.

특히 이번 주에 쏟아져 나온 책들 중 1면에 소개한 ‘지식의 다른 길’이나 3면에 소개한 ‘인간은 얼마나 오래살 수 있는가’와 같은 책들은 결국 ‘영성’을 이야기하면서도 기존의 사탕발림같은 단어들만 모아놓은 이른바 아포리즘 류들의 영성책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들입니다. 또 현재가 힘들고 괴로우니 ‘피안’(彼岸)으로 가자는 ‘신비’를 이야기 하지도 않습니다. 즉, 현재를 부정하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껴안고 현재의 문법으로 이야기하면서도 기존의 패러다임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영성의 탐구라고나 할까요.

6면에 소개한 ‘멍청한 백인들’이나 ‘마스터베이션의 역사’도 우리의 고정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해준다는 점에서 내용은 다르지만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씨의 에세이집도 눈여겨 봐주시기 바랍니다.

바쁘고 힘든 일상이지만, ‘책의 향기’에서 만큼은 삶의 여백과 여유를 독자 여러분과 함께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 특히 간절했던 한주였습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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