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틴 호프만과 스티브 맥퀸이 주연한 영화 ‘빠삐용’을 인상 깊게 보았던 사람들이 꽤 많다. 앙리 살리에르라는 실존 인물이 모델인데, 그는 원래 파리 뒷골목의 건달이었다. 영화 전편을 통해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주인공 빠삐용이 꿈속에서 지옥의 재판을 받는 대목이다. 자신은 “사람을 죽인 일도 없고 지금까지 사나이답게 떳떳하게 살았다”고 거세게 항의한다. 그러자 판관이 한마디로 잘라 말한다. “살인을 안 했다 하더라도 너에게는 인생을 낭비한 죄가 있다. 그러므로 유죄다.” 그러자 빠삐용이 ‘유죄? 유죄?’하고 중얼거리면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인생을 낭비한 죄’라는 말은 나에게도 충격적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유죄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것 같았다. 이 말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절실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들어가는 것을 꺼린다. 나이 든다는 것을 뭔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그래서 할 일을 잃어버리는 필연적 상황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인생을 낭비하는 죄’가 되는 것일까? 물론 젊은 시절을 삶의 정점으로 간주한다면 그런 생각은 당연하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젊은 날의 일과 사랑을 아무런 보상 없이 그저 상실한 것이 아니라, 그 길을 먼저 지나온 경험자로서 나이든 사람은 더 많은 것을 포용할 수 있는 강점도 있다. 미국의 39대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는 ‘나이 드는 것의 미덕’(김은령 옮김·끌리오·1999)에서 바로 그렇다고 화답을 한다.
나이가 가르치는 것일까?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맞으면서 나는 이제, 나이 든 사람이 나이 든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철없는 어린 아이와 다를 바가 없다는 정도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에는 반드시 ‘욕심’에 대한 경계가 포함되어야만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대통령이라는 큰 직위를 지낸 이의 노년이 얼마나 평범한 고민들로 채워질 수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쉰 여섯에 대통령직을 떠나 ‘실직자가 된 사람’의 고민이요, 대통령으로 일하는 동안 재산관리를 소홀히 한 탓에 ‘파산 직전의 채무자가 된 사람’의 고민이었다. 그리고 150년 동안 살아온 땅을 팔고 단 한 채뿐인 집까지 저당을 잡혀도 ‘파산을 막을 자신이 없는 소시민적’인 우리들과 같은 고민이었다.
얼른 내 본심을 말하자면, 우리는 언제나 이런 인간적인 전직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까? 재임 기간 중에 퇴임 이후를 완벽하게 대비해야 마음이 편하고, 퇴임 이후에는 치졸한 정치 게임이나 계속하며 골목대장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우리의 전직 대통령들, 욕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그들…. 낙향이라도 하여 유유자적 나이 든 자의 생을 음미하는 어른이 존재하지 않는 것 또한 우리 사회의 정신적 빈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많은 어려움을 아내 로잘린과 함께 헤쳐나가며 나이 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과, 나이 든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깊은 사랑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카터의 이 책을 읽으며 나이 든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보편적 미덕이란 무엇일지 다시 생각해보는 행복한 시간을 갖게 된다.
손풍삼 순천향대 교수· 인문과학대학 국제문화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