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한국은 일본의 눈부신 성장을 부러워하면서도 과거에 얽매인 탓인지 일본을 보는 시선에 늘 증오와 적개심을 걷어 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
“그 사이, 일부 몰지각한 일본 관광객들은 이른바 ‘기생파티’라 해서 한국으로 몰려와 흥청망청 돈을 뿌려 대며 한국 여성들을 성 노리개로 삼곤 했잖아요. 그런 점에서 일본 여성들은 한국 여행을 은근히 피해 왔고요. 그런데 이제 일본에서는 붐이라고까지 할 정도로 한국 유행이 일고 있고, 며칠 있으면 한일 월드컵까지 열리니 정말 믿기지가 않는다니까요.”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구로다씨는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고정된 이미지가 20여년 만에 바뀌게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가 이번에 펴낸 ‘사랑하므니다’와 ‘서울의 달인’(창해)에는 친근감을 넘어 사랑으로까지 변하게 된 한국에 대한 애정이 잘 담겨 있다. ‘사랑하므니다’는 그녀의 자전적 수필집이고 ‘서울의 달인’은 관광 가이드 북이다.
신참 여배우 시절, 평소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 관련 전문 리포터로 자리 잡았다는 그녀는 기용되는 프로마다 전력을 다했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88 서울올림픽 이전 서울은 대도시이면서도 골목마다 아시아의 정서가 흘러 넘쳤어요. 고색창연한 옛 거리가 남아 있었고, 포장마차, 리어카에는 먹을 것이 잔뜩 쌓여 있었고요. 연탄 타는 냄새야말로 서울의 냄새라고 할 수 있었지요.”
구로다씨는 그러나 서울올림픽 이후 개발이란 이름 아래 낡은 집들이 철거되고 새로운 빌딩들이 들어서면서 서울은 어디에나 있는 그저 그런 보통의 도시로 변했다고 아쉬워한다.
특히 서울타워는 도쿄타워를 본뜬 듯 하고 롯데월드는 도쿄 디즈니랜드를, 젊음의 거리 신촌은 하라주쿠를, 압구정동은 아자후 일대와 비슷해졌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 뭔가는 남아 있다, 겉으로는 일본의 대도시를 쏙 빼닮은 것처럼 변하는 것 같은 서울의 속을 어떻게 매력적으로 소개할 수 있을까, 그녀가 제대로 된 관광 가이드 북을 써야 겠다고 다짐하게 된 계기다.
“인사동에서 파는 물건은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에 가면 더 싸게 살 수 있어요. 문정동 아웃렛 매장은 일본에서 더 유명합니다. 맥반석 대중탕 같은 한국의 목욕은 몸뿐만 아니라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해 줍니다.”
그녀가 펴낸 가이드 북을 보노라면 새삼 익숙한 일상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늘 우리 주변에서 가깝게 있다보니 새로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것들이었는데 이렇게 다른 ‘렌즈’로 보면 새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2년여에 걸쳐 발로 뛴 취재와 직접 찍은 사진들로 가득해 땀냄새가 나는 그녀의 책은 한일 월드컵을 맞아 서울 안내 책자로 읽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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