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장애인 공동체인 ‘무지개 가족’(전북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의 지도신부 지정환씨(71·본명 디디에 세스테벤스).
호암상 사회봉사부문 수상자인 그는 23일 열린 시상식에 한복 차림으로 참석했다. 그는 파란 눈과 큰 코를 가진 벨기에 출신이지만 누구보다 한복이 잘 어울리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는 신부로 유명하다.
그는 1958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59년 한국으로 건너와 40여년간 한국 농민과 장애인을 위해 봉사해왔다.
“‘전설따라 지정환∼’. 제 국적이 한국인 줄 아는 사람이 많지만 국적은 벨기에입니다. 난 도민증은 없지만 40년간 이곳에서 살아온 자랑스러운 전라북도 도민입니다. ‘한국 피’는 수술할 때 조금 받았습니다. 이거(큰 코) 때문에 내가 한국 사람이라면 다 웃어요. 그래서 귀화는 못했어요.”
21일 무지개 가족을 찾자 이발을 막 끝낸 그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특유의 유머로 기자를 맞았다.
이곳은 4000여평의 대지에 ‘제비’ ‘개미’ ‘나비’ 등으로 이름이 붙은 5개동에 16명의 장애인이 생활하고 있다. 제비 둥지에서 개미처럼 노력해 나비처럼 훨훨 날아 사회에 복귀하라는 의미다. 84년 이후 이곳에서 재활치료를 받은 장애인이 150여명에 이른다.
그에게는 주변에서 붙여준 별명이 많다. 64년 전북 임실 성당의 주임신부로 있을 때 국내 최초의 치즈 공장을 세워 ‘치즈 신부’가 됐는가 하면 70년대 공화당 정권 시절에는 적극적인 사회비판 발언으로 ‘제일 나쁜 4명의 외국인중 한사람’으로 찍히기도 했다.
“62년 부안에 있을 때는 간척 사업을 했고, 치즈 공장의 전무는 16년이나 했습니다. 산양을 키우고 몇 년의 실패 끝에 제대로 된 치즈를 만들었습니다. 농민들에게 신앙 생활 뿐만 아니라 자활의 터전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출가외인’의 원칙을 지켜 가급적 그쪽에는 가지 않습니다.”
그 역시 70년대 초반부터 ‘다발성 신경 경화증’으로 하체의 기능을 서서히 잃었고 지금도 목발에 의지하고 있다.
81년 병 치료와 벨기에 전교 협조회 부총장 일을 맡기 위해 2년간 한국을 비웠다 84년 ‘여러 형태의 사람이 어울려 무지개처럼 산다’는 뜻을 지닌 무지개 가족의 지도신부가 됐다.
“호랑이도 본 집에서 죽고 싶다고 하나요? 여기(한국) 있어야죠. 작년 두달간 유럽에 갔다왔는데 빨리 돌아오고 싶어 혼났습니다.” 063-244-8120
전주〓김갑식기자 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