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쓰여왔던 말이다. 뇌물 스캔들처럼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사람들은 가장 지혜로운 대안인 양 이런 말로 결론내기도 하고,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부모들에게도 유일무이한 육아비법으로 알려주기도 한다. 이외에도 많다.
그런데, 이 말이 마치 번개처럼 내 가슴을 치게 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것도 ‘세상 일에 미혹될 일이 없어질’ 불혹의 나이에 말이다. 그것은 ‘최고의 유산 상속받기’(정지운 옮김·예지·2001)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미국의 한 석유 대부호가 죽으면서 20대의 손자에게 남긴 괴상한 유언으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손자는 매달 1개씩 비디오를 통해서 과제를 받고, 그 결과를 할아버지의 오랜 친구이자 대리인인 한 변호사가 검증한다. 이 검증을 통과해야 그 다음 과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12개의 과제를 모두 통과하면 할아버지가 손자를 위해 준비한 ‘최고의 유산’을 받게 된다.
평생 돈을 숨쉬는 공기처럼 여기며 전혀 어려움 없이 지내온 이 망나니 손자는 처음에 할아버지가 미쳤다고 길길이 날뛰지만 자신에게 특별히 생활능력이 없고, 할아버지의 유산이 없이는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기에 유언대로 과제 수행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 손자가 받은 과제들이 심상치가 않다.
그것은 말로 뱉어 놓으면 너무 뻔한 것이어서 낯 간지럽기조차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데 정말 소중한 것들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행복과 자부심을 주는 ‘일’, 옳게 쓰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돈’, 태어날 때부터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생 사랑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가족’,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며 자신을 연마시켜주는 도구인 ‘고난’, 매일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는 ‘황금의 감사 리스트’,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관계인 ‘우정’, 영혼을 치유하는 ‘웃음’, 자신과 함께 성장하는 ‘꿈’,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나눔’, 돈으로 살 수 없는 보물 ‘사랑’.
손자는 과제를 통해 삶의 기본적인 의미를 깨닫게 된다. 어쩌면 인생의 진리는 오래 전부터 우리 곁에 이런 모습으로 있어 왔는지 모른다.
어떤 외화 시리즈에서 주인공이 하는 말처럼 ‘진리는 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나이가 되면 가끔 섬광처럼 깨닫게 된다. 그걸 20대에 알았더라면 내 인생은 더 풍요로워지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에, 또 죽은 할아버지와 손자 간의 팽팽한 접전으로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가 하도 재미있어서 고등학교 3년인 아들에게 이 책을 주었다. 어머니를 비롯해 주변의 지인들에게도 이 책을 선물했다. 그 분들에게 최고의 유산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받은 감동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였다.
책을 받은 한 친구는 이렇게 답장을 보내왔다.
“언젠가 네가 ‘사람의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가 가장 먼 거리란다’하며 쓸쓸해 했다. 그 거리를 단숨에 이어주는 이 책의 만남은 기쁨 그 자체더라. 그런 넌 나의 기쁨이다.”
감동은 나누면 배가 된다던가. 이 책 선물이 배가 되어 내게 돌아왔다.
‘최고의 유산 상속받기’가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었던 셈이다.
이은미 KBS 2TV ‘2002 문화접속’ PD
livel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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