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년 남짓 국내 최고 책방으로 군림해 온 종로서적의 부도소식을 접하면서 기자에게 떠오른 싯귀다.
“난 아직도 종로 서적을 생각하면 그 앞에서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환영(幻影)이 떠오른다.”
대기업 간부 이영철씨(45)는 “우리 시대때 ‘시내에서 보자’는 약속은 곧 종로서적 앞이었다”며 “그 곳서 어슬렁거리며 책도 몇 권 훔쳐 보았고 매주 토요일이면 동대문 헌 책방까지 데이트 하면서 책 순례를 하곤 했다”고 회고한다.
종로 서적의 부도소식을 접한 출판인들은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안타깝다’고 입을 모은다. 변하는 시대상황에 제 때 변신하지 못한 결과이지만, 한 시대의 ‘문화 코드’가 추억속에 묻혀 버리게 된 데 대한 서운함이 깔려 있는 것이다.
현대식 대형서점과 온라인 할인판매에 밀려 전통의 대형 서점들이 문을 닫는 것은 우리만의 일은 아니다. 2년 전에는 250여년의 연륜을 갖고 있었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영국 글래스고의 ‘존 스미스 앤드 선’이 문을 닫았다. ‘학문과 서점의 도시’ 미국 보스턴에서 127년 역사를 자랑하던 로리앳 서점이 문을 닫은 것은 3년전이다.
서울 시내 한 서점 관계자는 “종로서적은 순수하게 서점으로 출발해 대형화를 이뤘다는 점에서 교보나 영풍문고와는 뿌리가 다르다”고 아쉬워 하면서 “70년대 일본의 고서점 산세이도(三省堂)가 무너졌을 때 구제금융으로 살린 적이 있다”며 말끝을 흐렸다.
전통과 추억, 자본과 시장 이런 것들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속수무책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경영진들이 지키고 싶었던 것들이 있었을까, 한 시대의 문화 상징을 이제 추억으로밖에 새길 수 없게 된 지금, 기자에게 떠 오르는 착잡한 질문들이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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